[우분투칼럼] G20 이후 한국, 글로벌 사우스-선진국 잇는 교량 국가 거듭나야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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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김성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튀르키예를 잇는 7박 10일간의 중동·아프리카 순방을 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일정은 G20 정상회의 전후로 4개국을 아우르는 전략적 방문이었다. 일정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다.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통칭), 특히 아프리카를 미래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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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G20 정상 기념촬영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월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파블로 키르노 아르헨티나 외교부 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이재명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주앙 로렌수 아프리카연합(AU) 의장, 올해 의장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리창 중국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인도네시아 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에드가르 아브람 아마도르 사모라 멕시코 재무부 장관, 막심 오레쉬킨 러시아 대통령실 부비서실장. 2025.11.22 [공동취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yz@yna.co.kr
올해 G20의 의제는 '연대·평등·지속가능성'이었다. 이 대통령이 첫 세션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장'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변화, 핵심 광물, 기술 전환은 아프리카가 당면한 도전이자 우리나라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G20이 사상 처음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린 것은 국제사회가 아프리카를 더 이상 주변이 아닌 정책 결정의 중심 무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는 이 흐름을 정확히 읽었고, 아프리카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국제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3개국 순방은 외교적 수사 이상의 실익을 낳았다.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UAE에서는 인공지능(AI), 방산, 우주, 바이오헬스를 중심으로 7건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첨단기술 협력의 지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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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튀르키예 원전 후보지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알파르슬란 바이락타르 튀르키예 에너지 장관은 이날 2번째 원전 건설 계획과 관련해 미국, 한국 등과 협력할 수 있다며 '3국 협력' 모델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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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문지인 튀르키예에서는 원전, 방산, 첨단기술로 협력 범위를 체계화하며 양국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중간 기착지였던 이집트에서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추진에 합의했다. 이어 카이로대학 연설을 통해 '샤인(SHINE) 이니셔티브'라는 중동·아프리카 전략 비전을 제시했다. 안정(Stability), 조화(Harmony), 혁신(Innovation), 네트워크(Network), 교육(Education)의 다섯 축을 내세운 이 전략은 한국 외교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단기 성과를 넘어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축인 안정과 조화는 중동과 아프리카 나아가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는 의지를 담았다면 세 번째 축인 혁신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녹색성장을 꾀하는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우리의 상대적 우위 기술인 디지털 전환의 역할을 강조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축인 네트워크와 교육은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동반 성장의 플랫폼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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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UAE 국빈 방문 마치고 이집트로 (아부다비=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1월 19일(현지시간) 다음 공식 방문지인 이집트로 가기 위해 아부다비 왕실공항에서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2025.11.19 superdoo82@yna.co.kr
이 일련의 행보는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구조적 전환이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포용적 협력, 특히 아프리카와의 실용 외교는 한국이 '중간국 외교'를 넘어 '강소국' 외교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수순이다. 아프리카는 '풍부한 자원', '급성장하는 시장', '젊은 인구', '역내 통합'이라는 네 가지 성장 조건을 갖춘 대륙이다. 우리가 주저할 이유는 없다.
현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활용해 아프리카 발전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특히 에너지 전환, 생태관광, 스마트 농업, 디지털 기술, 교육 등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아프리카의 성장 비전과 결합하면, 양측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윈윈'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원조를 넘어 공동 성장 모델이라는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 한반도 외교를 위한 전략적 자산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외교, 특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로서 크게 세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냉전 시기부터 북한과 군사, 교육, 개발 부문에서 유대 관계를 유지해 온 지역이다. 이 관계는 북한이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서도 외교적 생존 전략을 다각화하는 기반이 됐다. 한국이 아프리카 각국과 신뢰를 쌓고 협력을 제도화하면, 이 지역을 북한과의 비공식적이거나 간접적인 소통 채널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아프리카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는 대북 중재자로서 외교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제3자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여기에 한국의 기술 및 개발 협력 모델이 신뢰 기반을 형성한다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평화 담론과 제재·안보 해법에 좀 더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이는 북한과의 실질적 대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전략적 지렛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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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이재명 대통령 아프리카·중동 순방 주요 일정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오는 17∼26일 아프리카·중동 순방에 나선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4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일정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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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중 외교 전략이 가능해진다. 현재 트럼프식 양자 외교가 부상하며 다자주의의 힘이 약화하고 있다. 한국은 아프리카와 다자적 협력과 동시에 북한과의 직·간접적 채널을 병행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공인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토대로 기업 협력사업 등을 활용해 중국, 러시아 등과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북한의 참여 또는 한국의 목소리를 제고할 수 있는 레버리지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북 정책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히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외교가 아프리카에서 추진해야 할 실천적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산업·기술 협력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태양광·그린수소·배터리 등 에너지 전환 기술과 AI·데이터 인프라를 묶어 국가별 맞춤형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바로 아프리카가 필요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 생태계 구축이다. 이는 기술 전달만으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현지 대학·연구기관과 연계한 실무교육을 통해 'K-표준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 확대와 동시에 아프리카 내 실업률 해결 및 신기술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
둘째, 기후위기 대응 협력의 확대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환경복원, 친환경 인프라 구축, 재난관리 역량 강화는 우리나라가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이자, 양측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이익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이에 따른 친환경 산업 중심의 현지 고용과 기술 이전을 병행해야 한다.
셋째, 한국-아프리카 다자외교 메커니즘의 구축이다. 우리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노스로 진입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중 경쟁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아프리카 국가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아프리카연합(AU)과 유엔을 축으로 한 협력 채널을 강화하고, 분쟁 예방·평화 구축·경제 발전을 포괄하는 다자협력 방안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구축된 플랫폼은 한국의 평화적 외교 경험과 조정 역량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장이 된다. 동시에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 이슈에 대한 아프리카의 이해와 지지 기반을 넓히는 통로가 된다.
넷째, 공공외교를 통한 사회적 신뢰 기반 확대다. K-컬처, 교육, 유학생 교류를 통해 장기적 신뢰가 기반이 될 수 있는 문화, 스포츠, 교류를 확대한다. 그리고 한국의 녹색·포용 성장 비전을 아프리카 현지에 알리고, 공동 문제 해결 의지를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기 위해 정부·기업·비정부기구(NGO)·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 협력 플랫폼을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다섯째, 생태관광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전, 생물 다양성 보전,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에 따른 경제발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이미 2013년 '생태환경' 개념을 명문화하고 이를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동한 바 있다. 한국-아프리카 간 '생태관광 협력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아프리카 내 스마트 관광, 친환경 숙박시설, 관광모델 적용 등을 통해 교통·통신·에너지 인프라를 포괄하는 파생 사업 창출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8년 G20 유치를 확정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와 선진국을 잇는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했다. 2010년 서울 정상회의 이후 18년 만에 다시 의장국을 맡게 된 이번 유치는, 한국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전략적 교량국가로 자리매김할 드문 기회다. 이는 또한 한반도 평화와 미래 외교 전략을 재설계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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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참석한 각국 정상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왼쪽)을 비롯한 회원국 정상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11월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테이블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2025.11.22 [공동취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yz@yna.co.kr
과제는 명확하다. 아프리카는 이제 단순한 경제 파트너를 넘어선다. 한국과 함께 미래의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다. 이번 순방에서 만들어 낸 외교적 성과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상징적이고 실용적 플랫폼으로서 한·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정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과들이 제도와 정책으로 정착할 때, 아프리카 협력은 일회성 외교가 아니라 한국 외교의 지속적 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화합하는 뿔닭은 함께 날아오른다"는 콩고민주공화국 속담이 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연대 의식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반도의 평화와 함께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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