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유언 따라 산골 암자서 15년…"긴 휴가였죠"
맏상좌 출신 덕조스님 책 '무언화' 출간…"법정스님의 큰 가르침은 자기 질서"
"무소유 정신, 현대인에게 더욱 필요한 메시지"…세미나·템플스테이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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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언화' 출간한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책 '무언화(無言花) : 고요 속에 피어난 깨달음의 꽃'을 출간한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이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책에 담긴 생각들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9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덕조는 맏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2010년 3월 입적한 법정스님의 유언대로 맏상좌 덕조스님은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에 정진했다.
5년을 더해 꼬박 15년을 자연에 머물다 지난해 서울 성북구 길상사 주지로 돌아온 덕조스님이 책 '무언화(無言花) : 고요 속에 피어난 깨달음의 꽃'(조계종출판사)을 펴냈다. 불일암에서의 깨달음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엮은 책이다.
책 출간에 맞춰 지난 8일 길상사에서 만난 덕조스님은 스승 법정스님이 자신에게 당부한 10년 수행을 "긴 휴가"라고 표현했다.
1997년 길상사 창건 이후 12년간 주지를 맡으며 서울 도심 한복판에 머물렀던 덕조스님은 스승이 준 '보상 휴가' 덕에 "인위적인 도시를 떠나 엄마 품속 같은 자연으로 돌아가 마음을 쉴 수 있었다"고 했다.
"성찰의 시간이었고, 인고의 시간이었으며, 비움의 시간이자 감사의 시간"이었다는 15년의 기록을 담은 책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각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스님 자신과 한 마음의 대화를 옮긴 것이다. 그만큼 꾸밈없고 자연스러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덕은 친절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는 있습니다."(93쪽)
"세상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고집을 부릴수록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 하는 것입니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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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조스님은 법정스님이 상좌를 두지 않겠다는 자신의 원칙을 거두고 처음 받아들인 제자였다. 오랜 시간 법정스님을 가까이서 모시며 스승의 가르침을 두고두고 되새긴 흔적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책 속 사진들도 법정스님이 준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시작한 덕조스님이 직접 찍은 것이다.
법정스님으로부터 받아들인 가장 큰 가르침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덕조스님은 "자기 질서"라고 답했다.
"수행자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자기 질서'라고 표현하고 굉장히 강조하셨습니다. 출가 수행자는 남의 눈치를 보고 자기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죠. 수행자뿐 아니라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역할을 제대로 못 해서도 안 되고, 월권을 해서도 안 되고요."
불일암 수행을 마치고 '회향'(廻向·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림)을 위해 길상사로 돌아온 덕조스님은 법정스님의 정신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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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언화' 출간한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책 '무언화(無言花) : 고요 속에 피어난 깨달음의 꽃'을 출간한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이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9
지난 10월에는 '무소유' 정신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처음 개최했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무소유' 등 저서들이 절판되고 15년이 흐르면서 그의 사상이 점차 옅어질까 우려해서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라'는 무소유 사상이 오늘날 진짜 필요한 정신적 메시지입니다. 불필요한 건 정말 필요한지 알기도 전에 순간적인 욕구로 소유하는 것들이죠. 작은 것으로 만족을 찾는 '소욕지족'(少欲知足), 비워야 채워진다는 메시지를 통해 현대인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넘쳐나는 시대에 '무소유'를 향한 역설적인 갈망은 길상사가 올해 여름부터 시작한 '하룻밤 무소유' 템플스테이에서도 확인된다. 휴대전화 등 일체의 소지품 없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으로 겨울 네 차례 신청이 일찌감치 마감됐다. 신청자 중 절반은 20대였다고 한다.
무소유 세미나와 템플스테이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라는 덕조스님은 한 해 마무리를 앞둔 이들에게 "해가 매일 뜨지만 늘 같은 해는 아니다.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내가 아니다. 항상 새로운 나로,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다"며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날마다 좋은 날)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288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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