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민족학교장 "독립운동가 후손 자긍심, 교육으로 이어갈 것"
연해주서 고려인민족학교 운영 김 발레리아 교장, 연수차 방한…"모국 지원 절실"
"영화 '하얼빈'에 공감…안중근 의거 지원한 崔선생 이야기 적어 아쉬움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후원금도 줄어 운영이 어렵지만 고려인 차세대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라서 학교 문을 계속 열어가려고 합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의 김 발레리아(64) 교장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일대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학교명을 지은 만큼 어떻게 해서든 교육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의 생계를 돕고 학교를 세웠으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 일본군에 의해 체포돼 그해 4월 7일 순국했다.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 저격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19년에 최 선생의 이름을 따 개교한 이 학교는 유치원부터 성인반까지 운영하며 한때 학생이 22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9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전쟁으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의 지원금이 끊기다시피 하면서 임대료를 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교장은 재외동포청 산하의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주관한 'CIS 한국어교사 초청연수' 참가차 모국을 방문했다.
한국어·한국문화 교육 등 역량 강화를 위한 심화 연수에 참여한 그는 "다양한 교수법을 배운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면서 "돌아가면 학생들에게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연수 기간 최근 개봉한 영화 '하얼빈'을 단체관람한 김 교장은 "러시아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덕분에 일본 제국주의의 연해주 침략이 늦춰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에 고려인으로서 더 격하게 공감했다"면서도 "다만 의거를 전격적으로 후원한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가 많이 안 나왔다"며 진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김 교장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고려인 사회의 단합, 교육과 계몽, 독립운동, 의병 활동 등에 앞장섰던 최 선생은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라며 "학교에서 일대기를 담은 연극을 매년 시내 극장을 빌려서 공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아리랑 예술단'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고려인 러시아 이주 160주년을 기념해 예술단을 이끌고 한국과 중국에서 공연을 펼쳐 주목받았다.
사명감으로 차세대 고려인 교육에 매진해 온 김 교장의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 학교에 숨통이 트일 만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최근 한국 가톨릭 단체가 현지에 지은 복지관 운영에 손을 떼면서 빈 건물을 교육시설로 써도 좋다는 연락을 받은 것.
김 교장은 "재정 압박으로 문을 닫을 위기였는데 무상 임대 장소가 생겨 너무나 다행"이라며 "오는 2월 초에 학교를 이전할 계획"이라고 반겼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러시아 시베리아로 이주했다가 구소련 붕괴 후 연해주로 이주한 그는 어린 시절 제대로 우리말을 배우지 못했다. 당시 정부 정책으로 소수민족 학교가 다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김 교장은 "고교 시절 아버지가 '거리에서 만나는 집시도 자기 말을 하는데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말을 못 하는 게 너무 슬프다'며 우시는 모습을 봤다"며 "그때부터 어른이 되면 학교를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웠고 학교를 세우기 전인 1996년부터 '아리랑 예술단' 운영해온 그는 2004년부터 15년간 연해주에서 발행하는 '고려신문'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학교는 건물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게 됐음에도 재정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배우러 올 수 있도록 월 1천루블(약 1만4천원) 수준으로 최소한의 학비만 받는 것도 학교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김 교장은 인터뷰 말미에 "새로 이전하는 학교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모국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차세대 고려인 교육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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