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눌 이야기 _깜빡 잊은 우리말
고려장(高麗葬)/ 혼돈의 질문
한문수 편집위원(역사칼럼니스트 수필가)
역사적 근거가 있었는가? 결론은 이러한 장례풍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한국의 장례 풍속을 기록한 것 중 어느 문헌에도 이러한 기록이 없다.
1919년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사 미와 타마키(三輪環)가 ‘불효식자’, 1924년 조선총독부, 1926년 나카무라 료헤이(中村亮平)가 정리한 ‘조선동화집’에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집중 세뇌시켜, 조선을 부도덕한 나라로 폄하시켰다.
중국의 효자전(孝子傳), 인도의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棄老國) 설화가 원전이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무자비하게 수입된 서책 중 이러한 내용이 고려장으로 둔갑되었고, 이는 사실인양 일반에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이 우리 선조들의 무덤을 도굴, 골동품을 탈취하기 위해 날조했다.
고려장(高麗葬)의 葬자는 무덤을 뜻하는 말로 일상용어였을 뿐이다.
고려 때는 법으로 규정되었다는 일부 목회자의 설교, 처연한 목소리로 고려장을 읆어 대는 가수의 행태가 안타깝다.
요양원으로 비유하는 행위 또한 역사를 오도하고 제 조선(祖先) 마저 부정하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