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말임 수필, 〈나에게 불교란〉


■박말임 수필

나에게 불교란

박말임(수필가)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절에서 보낸 문자를 읽으며, ‘나는 불자인가?’ 라는 자문을 한다. 결단코 아니다. 나는 불교인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다. 천주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유교인도 아니다.

​나는 1년에 한번 절에 가고 성탄 전야에는 천주교당에도 가고 교회도 간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곳을 찾는 순례자가 되어 종교 의식으로 감동받고 싶어서 간다.

종교에 관한한 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존재다. 어떠한 종교에도 경계가 없다. 심지어 무속인을 찾아 신수를 보러 가기도 한다.

다만 부처님 오신날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은 날이다. 게다가 덤으로 4일간의 긴 연휴를 맞았다. 부처님, 예수님이 아니면 누가 나에게 무상으로 이렇게 긴 황금연휴를 주겠는가? 종교를 떠나 얼마나 기쁨이 충만한 날인가?

날 낳아 기르신 우리 부모 생신일, 내 생일에도 이런 황금연휴는 주어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막내딸인데도 돈은 주면서 공짜로 쉬라는 은덕은 베풀어 줄 능력이 없었다. 고마우신 석가모니 부처님, 예수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불자도 아니면서 매년 절에는 왜 가는가? 신앙심도 없으면서 매년 부처님오신 날 사찰에 가서 등촉을 밝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교대학에 들어가서 법문은 왜 배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게 다 부모님 영향이다. 나는 아기 때부터 엄마 등에 업혀 '벽송사'라는 절을 다녔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날 떡 얻어먹는 재미로 엄마 절에 갈 때 따라나섰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특 상품의 음식을 부처님 앞에 올린다. 그 음식은 스님들이 드시고 신도들이 나누어 먹었다. 배고픈 민초들이 어디에서 그런 고급 과일을 먹어봤겠는가. 어른들은 불심으로 사찰을 드나들었을지 모르지만 코흘리개들은 사람 구경, 맛있는 음식에 홀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따라다녔다.

​엄마가 절에 가는 날은 정갈한 옷(평생 한복을 입으셨다)을 차려입고 오랜만에 때 벗은 힌 고무신을 신는다. 고쟁이 주머니에 지전 몇 잎을 챙겨 넣고 쌀 주머니는 똬리를 얹은머리에 인다.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낚아채고 당겼다 늘췄다, 당신의 보폭에 맞추려고 어린 나를 낑낑거리는 강아지 취급을 했다.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리는 절에 당도하면 구름처럼 몰린 인파로 엄마 치맛자락을 놓치기 일쑤였다. 법당 바깥에서 엄마가 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상상을 했었다.

엄마는 식구 생일상 앞에서, 조상님 제삿날은 제상 앞에서 국과 밥이 싸늘하게 식을 때까지 엄마의 축원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의 기도는 아버지부터 시작해 막내인 내 이름이 불리고도 큰오빠 아이들 3명의 이름이 불리고 생년 월 일까지 뜨르르 이어졌다.

엄마는 입으로는 중얼중얼, 손으로는 손바닥을 살살 비비면서 기도 했다. 우리 식구는 14명이나 됐다. 엄마의 축원 시간은 엄숙하고 숭고했다. 감히 누구도 그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헛기침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린 조카가 상에 차려진 음식에 손이 뻗치는 순간 그 아이는 다른 방으로 퇴출당했다.

나는 부처님 오신날이 마냥 즐거운 건 아니었다. 엄마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가족들을 위한 축원이 끝나는 동안 내 뱃속에는 개구리가 출몰하여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절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우리 집은 허구한 날 보리밥 일색인데 절에서는 하얀 쌀밥을 먹었다. 쌀밥 누룽지는 얼마나 바삭하고 구수름한지, 부엌 보살님이 싸준 누룽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올리는 가족을 위한 축원 의식은 불교 의식과 일맥상통한 점이 많다. 그 분위기가 엄숙하고 숭고하다. 불교가 한국의 민간신앙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은 뿌리 깊은 민간신앙을 추종해 온 민초들의 정신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절에 가면 저만치 한 켠에 칠성각이 있거나 산신각이 있다. 칠성각은 도교의 칠성 신앙, 산신각은 한국 전통 민간신앙이 모태라고 한다.

나는 부처님 오신날 절에 갈 것이다. 매년 듣는 스님의 법문,

"그 쓸데없는 욕심 좀 그만 내려놓으세요. 우리 인생이 한나절 꿈인데, 그 꿀 한 방울에 목숨을 거나 원 쯧쯧쯧..."

​스님의 법문을 듣고 돌아 나온 그 자리에서 나는 비빔밥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절 밥은 항상 맛있다니까, 하면서. 눈으로는 저기 바구니에 떡을 탐한다. 밥을 먹고 나오며 과일도 한 접시, 비닐팩에 싸놓은 절편도 두 개 챙길 것이다. 기도하느라 법당에서 내려오지 못한 신도들은 아랑곳없이 식구 줄 떡을 탐내는 중생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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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말임 약력

1995년 1월 월간 『수필문학』’으로 수필가 등단(필명 박진욱)

1994년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차로 인한 사연들’공모전 수필 당선

1997년 에넥스 ‘가족사랑’ 전국 글 공모전 금상

청주문협 회원

경남일보 〈경일춘추〉 2025년 1-2월 필진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