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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부경』, 한민족 수학의 원형
구고 편집위원
계연수桂延壽(1864-1920)는 한민족 수학의 원형인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낭가郎家의 『대학』과 『중용』에 해당된다고 했다. 『대학』은 유교의 학문 방법론을, 『중용』은 유교의 형이상학과 불변의 도덕적 가치인 중中의 이념을 강조한 경전이다. 그만큼 ‘1․3․9․81’ 수의 법칙으로 구성된 『천부경』은 한민족의 정신 세계를 대변하는 최고의 경전이라는 뜻이다.
『천부경』에 깊숙이 새겨진 수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천부경』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나는 시작이나 무에서 시작된 하나이다. 이 하나가 세 가지 지극한 것으로 나뉘어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 『천부경』의 수학은 이 글귀에 잘 녹아 있다. ‘1-3’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가 셋으로 분화되고, 셋은 다시 하나로 귀결된다는 논리다. 1의 자기 분신이 3이요, 3의 부모는 곧 1이다. 이러한 ‘1-3’ 원리의 자기 복제가 ‘9-81’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1-3-9-81’로 전개되는 『천부경』의 논리는 생명의 수학에서 말하는 ‘프랙탈(Fractal)’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1-3-9-81’의 기초는 ‘1-3’이다. 비록 3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은 매우 많으나, ‘셋’이라는 구조와 숫자 만큼은 동일하다. ‘셋’에 대한 형이상학적 규정으로는 천극天極․지극地極․인극人極의 3극과 『주역』의 하늘․땅․인간[三才] 및 『정역』의 무극․황극․태극이 있다. 이밖에도 전국 사찰의 대웅전에 삼존불三尊佛이 배치된 것도 3수문화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대 과학은 물질의 최소 입자가 양자․중성자․중간자로 분화한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며, 한글도 원(○)․방(□)․각(△)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제되었고, 인체도 머리․몸통․다리의 3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제사상의 다리[三足]가 셋인 이유도 『천부경』 수리철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천부경』은 천지인을 하나로 묶어서 만물의 변화와 인간 삶의 목적을 설명한 경전이다. 『천부경』을 바탕으로 땅의 뜻을 밝힌 『지부경地符經』이 만들어졌다. 『천부경』이 81자, 『지부경』은 100자로 쓰였으며, 『삼일신고』는 366자로 이루어졌다. 『천부경』은 하도에 근거한 낙서의 9×9=81, 『지부경』은 10수를 지향하는 의미가 담긴 ‘일적십거’의 10×10=100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삼일신고』 366 글자는 1년 366일의 역법과 관련 있는 숫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천부경』․『지부경』․『삼일신고』는 공통으로 역법과 연관이 있으며, 더욱이 『천부경』의 3극과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 및 ‘용변부동본’은 본체와 작용의 전환을 통해 81수가 100수를 지향한다는 이론이 매우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다.
체용의 전환을 설명하는 체계로서 하도낙서보다 유용한 것은 없다. 『천부경』과 『정역』의 공통점은 81 수학에 기초한 것에 있다. 특히 81은 『정역』을 이해하는 알파와 오메가에 해당된다. 그리고 81수를 형성하는 3원 구조와, 6을 중심으로 팔방에 펼쳐지는 법칙은 마방진의 신비를 넘어서 합리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천부경』의 중심에 ‘6’이 존재하는 필연성이 인정된다면, 『천부경』이 하도낙서 이론의 뿌리로 인정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천부경』에 근거한 하도와 낙서의 논리, 그리고 후대에 출현한 홍범사상를 비롯하여 『정역』도 『천부경』의 수학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일부는 낙서의 중심 5와 하도의 중심 6을 통합한 ‘5인 동시에 6’이야말로 하도와 낙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중용으로 인식하여 선후천 전환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천부경』을 『정역』과 비교 검토하는 작업에 논리적 비약이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1․3과 중앙의 6 및 전체 81수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주역』과 『천부경』의 체용관을 비교해보자. 『주역』에는 『천부경』이 말하는 본체와 작용 가운데 작용 중심의 사유가 짙게 배어 있다. 예를 들어 건괘乾卦는 ‘9수를 사용한다’고 했으며, 곤괘坤卦는 ‘6수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면 『주역』은 왜 용구용육用九用六으로 만물의 변화를 설명했는가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건괘 9수의 근거는 10이고, 곤괘 6수의 근거는 5다. 그러니까 건괘는 10을 근거로 삼아 9로 작용하고, 곤괘는 5를 근거로 삼아 6으로 작용하는 체계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건괘는 ‘체십용구體十用九’, 곤괘는 ‘체오용육體五用六’으로 전개되는 원리를 바탕으로 『주역』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복희, 문왕․주공, 공자에 의해 『주역』이 형성된 뒤 몇 천 년 뒤 조선에서 『정역』이 출현했으나, 원리의 측면에서는 거꾸로 『정역』에 근거하여 『주역』이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