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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부경』 81자의 구성 근거- ‘일적십거一積十鉅’, 하도와 낙서를 품다

『천부경』은 하도낙서 또는 『주역』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천부경』과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연관성을 『환단고기』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양 상수론의 꽃은 하도낙서에 압축되어 있다. 하도가 음양의 조화로 구성된 놀라운 대칭형의 도상이라면, 낙서는 대칭이 깨져 활발한 운동이 전개됨을 반영한다. 낙서의 비대칭과 음양의 불균형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운동하면서 진화한다는 시간의 화살을 도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하도낙서는 생명의 운동 방정식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은 하도의 원형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일적십거一積十鉅’의 10수로 열린다는 명제에 하도가 숨겨져 있으며, 낙서는 9×9의 81 형태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러니까 『천부경』은 10수 하도가 전제된 9수 낙서의 전개 방식을 통해 세계의 구성과 생성 변화를 설명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하도는 1-6, 2-7, 3-8, 4-9, 5-10이 각각 음양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구조를, 낙서는 1-9, 2-8, 3-7, 4-6이 각각 음은 음끼리 짝을 이루고, 양 또한 양끼리 짝을 이루는 음양의 불균형을 형성하는 상극의 구조를 띤다. 따라서 낙서는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나 진화를 거듭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숫자가 없는 곳은 없다. 천지의 수는 1부터 10까지의 홀수와 짝수로 이루어져 있다. 홀수는 1, 3, 5, 7, 9로 다섯 개이며 짝수 역시 2, 4, 6, 8, 10으로 다섯이다. 그리고 1, 2, 3, 4, 5는 생수生數이며, 6, 7, 8, 9, 10은 성수成數이다. 생수를 다시 음양으로 구분하면 1, 3, 5는 양陽으로서 하늘을 상징하는 ‘삼천參天’이며 2, 4는 음陰으로서 땅을 상징하는 ‘양지兩地’이다. 『주역』은 생수와 홀수 위주의 우주론을 전개시키고 있다면, 『정역』은 성수와 짝수 위주의 우주론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정역사상에 따르면, 생수가 선천이고 성수는 후천이다. 즉 전자가 ‘삼천양지參天兩地’라면, 후자는 ‘삼지양천參地兩天’의 구조를 이룬다. 성수 6, 7, 8, 9, 10에서 짝수는 셋(6, 8, 10)이고 홀수(7, 9)는 둘이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선후천의 전환을 겨냥한 정역사상은 본체와 작용[體用]의 근본적 전환을 통해 선천 삼천양지의 시스템이 후천 삼지양천의 시스템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풀어헤쳤다.

그러면 『천부경』은 왜 반드시 81수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지금 전해지는 81자 문헌 이외에도 여러 판본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원본을 제외한 다른 판본들은 필사 과정에서 오탈자 및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최치원崔致遠(857-?)이 옛 글자로 된 『천부경』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81자가 되었다는 것이 하나의 통설로 자리잡고 있다. 81자는 학문의 엄밀성을 보증하는 수학 체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천부경』의 권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대의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246개의 문제들을 수록한 『주비산경周髀算經』에는 주공周公과 상고商高의 대화로 시작한다. 이곳에는 ‘9×9=81’의 공식 이외에도 변의 길이가 각각 3:4:5인 직각삼각형의 성립에 대한 이른바 피타고라스 정리를 얘기하고 있다. 특별히 “정사각형은 땅에 속하고 원은 하늘에 속하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반듯하기 때문이다.”라는 수학의 근거를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연역하고 있다.

“옛날에 주공이 상고에게 물었다. ‘대부가 수에 능통했다는 말을 내가 들었소. 아주 예전에 포희씨가 하늘 둘레의 역도를 세운 것에 대해 묻겠소. 하늘은 계단을 밟아 오를 수가 없고, 땅은 자로 잴 수가 없소. 청컨대 수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소.’ 상고가 말하기를 ‘수의 법칙은 원과 정사각형에서 나왔는데, 원은 정사각형으로부터 나오고, 정사각형은 곡척으로부터 나오며, 곡척은 구구단의 9×9=81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구구 법칙’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한 경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둥글고 땅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천문학에서 비롯된 보편성을 지닌 법도인 것이다. ‘구구법’의 성립 근거는 9수 낙서에 있으며, 낙서가 하도의 울타리 안에서 생명 활동하는 법칙을 『천부경』은 81의 낙서와 ‘일적십거’의 10수 하도를 융합해서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채침蔡沈(1167-1230)의 아버지 채원정蔡元定(1135-1198)은 홍범구주를 오랫동안 탐구했으나, 홍범에 대한 전문 저작물을 짓지는 못했다. 채원정은 아들에게 자신의 연구 과제를 맡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채침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 5권을 저술했다.

『홍범황극내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낙서학洛書學이다. 책 앞부분은 실제로 ‘낙서’의 도상을 그린 「홍범황극도洪範皇極圖」를 중심으로 「구구원수도九九圓數圖」․「구구방수도九九方數圖」․「구구행수도九九行數圖」․「구구적수도九九積數圖」 등을 실어 자기 철학의 독창성을 발휘했다. 둘째, 홍범구주의 수학을 송대 학술에 접목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상수론이다. 셋째, 하도보다는 낙서를 중시하는 81수의 우주관을 펼쳐 스승 주희와 아버지 채원정의 공동 저술인 『역학계몽』과 다른 수리론을 주장했다. 채침은 『주역』이 ‘상象’ 중심으로 천지가 하는 일을 드러낸 것이고, 홍범은 ‘수數’ 중심으로 천지의 질서를 규명한 것이라고 구분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극명하게 밝혔다.

채침은 낙서를 사다리로 삼아 홍범과 주역학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는 주역학과 홍범학을 통일시키기 위한 근거로 상의 근원은 하도에서, 수의 근원은 낙서에서 찾았다. 채침은 낙서의 외연과 내포를 심화 확대시켰다. 홍범의 수리 자체가 곧 낙서이기 때문이다. 이 홍범의 수학을 『주역』의 권위에 대등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의무라고 확신했다. 채침은 홍범의 수학과 『주역』의 논리에 대한 차별화를 통하여 새로운 형이상학을 모색했다.

그 요지는 『주역』이 1 → 2 → 4 → 8 → 64 → 4,096의 질서라면, 홍범은 1 → 3 → 9 → 81 → 6,561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역』은 2의 제곱셈 또는 세제곱셈, 홍범은 3의 ‘제곱(n²)’ 형태로 전개된다. 그것은 2 → 2²(4) → 2³(8) → 8²(64)의 형식과 대비되는 3 → 3²(9) → 9²(81) → 81²(6,561)의 형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채침은 낙서를 바탕으로 만물의 공식을 수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힘입어 당시 유행하던 성리학에 수학의 엄밀함을 보강했던 것이다.

최석정의 『구수략』이 유명한 이유는 세계 최초로 9차 직교라틴방진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마방진魔方陣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9차 직교라틴방진은 가로 세로 9칸씩 81개의 칸에 숫자가 1에서 9까지 하나씩 들어가는 방진이다.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합이 같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수학계의 베토벤, 해석학의 화신으로 불리는 스위스의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최초로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석정이 67년 앞서 발표했음이 최근 인정되었다.

도표 (A)는 낙서의 도상이며, 도표 (B)는 가로 세로를 통틀어 공통으로 1, 2, 3, 4, 5, 6, 7, 8, 9가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마방진의 변형을 통해 낙서가 사방으로 발전 확대되는 방식을 수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는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만물을 융합하고 소통시키는 질서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수학은 만학의 여왕일 수밖에 없다. 수학과 음악을 통해 우주의 근원에 다가섰던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산술은 수 자체를 공부하는 것이고, 음악은 시간에 따른 수를 공부하는 것이며, 기하학은 공간에서 수를 공부하는 것이고, 천문학은 시간과 공간에서 수를 공부하는 것이다.” 수는 자연이 규칙적인 패턴으로 전개되는 원리인 동시에 그것을 알 수 있는 강력한 사유의 도구가 된다. 수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사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수학은 문명을 떠받쳐온 거대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채침의 “수는 사람에 말미암아 일어나고, 수는 사람에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만물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數由人興, 數由人成. 萬物皆備於我]”는 말은 곧 자연은 수학적 본성을 바탕으로 생성되고, 수학은 인간 전체를 꿰뚫는 인문학의 성격을 띠고 출현했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의 수학화를 시도한 피타고라스(Pythagoras: BCE 582?-BCE 500?)는 만물이 수에 의해 형성되었고, 수는 자연 전체에서 으뜸가는 것이기 때문에 수들의 요소가 만물의 요소들이며, 온 우주가 조화이자 수라고 믿었다. 자연의 수학화는 ‘수가 하늘과 자연을 만들어낸다’라는 우주론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수를 지니고 있다’라는 인식론에 두 발로 딛고 서 있다. 수는 우주와 인간 정신을 이어주는 튼튼한 교량인 셈이다. (구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