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markus-winkler-b3WI99ny-Ew-unsplash

◆시

앉은뱅이 부처꽃

고 영 섭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자집을 지은 그는

이름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 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시

불멸

고 영 섭

가장 뜨거운 곳에서도

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삶이란

갖은 불길 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온몸을 던지는 것이다

의상(義湘)이 스승 지엄(智儼)에게 건넨

열 권짜리 『대승장』,

더욱 압축할 것을 명받고 만든

네 권의 『입의숭현장』

스승은 이것을 불속에 던졌다

금강(金剛)의 언어는 용광로에서도 녹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고 남은

이백열 자의 종이 사리(舍利) 「법성게」(法性偈)

감지(柑紙)가 아니어도 즈믄 세월 이겨낸

종이의 구슬, 종이의 정골(頂骨) 사리

불꽃에 스러지는 종이에도

사리가 있다, 그 속에서

시(詩)의 사리를 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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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시인 약력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

한국불교사학회 회장 겸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

(사)한국불교학회 회장 겸 이사장 역임

•유튜브: 고영섭교수의 문사철대학, 한국불교사연구소TV 운영

•시집 : 《흐르는 물의 선정》, 《바람과 달빛 아래 흘러간 시》, 《사랑의 지도》

•연구논저 : 『한국사상사』, 『한국의 불교사상』, 『한국불교사』, 『한국불학사』(3책), 『붓다와 원효의 철학』,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분황 원효』,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탐구』, 『한국불교사궁구』(2책), 『한국불교사참구』 등 한국불교사, 한국불교사상사 관련 논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