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의 수행론[4]

석사눌 편집위원(원효불교학술원 이사장)

3. 『능가경』의 사상사적 위치

『능가경』의 사상적 위치에 관해서 중국 당나라의 불교 학자 이통현(李通玄, 635~730) 장자는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40권)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종지를 중심으로 제1 소승계경(小乘戒經)부터 제10 『화엄경』에 이르기까지 10가지로 총괄하여 밝혔다. 『능가경』은 다섯 번째에 들어가 있고 5법、 3자성、 8식、 2무아를 종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능가경』은 흔히 대승불교의 백과사전적 경전으로 지칭된다. 반야·법화·화엄·열반경과 승만경 등 대승 경전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상이 종합·융화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전개한 경전인 까닭이다. 실제로 『능가경』은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부파, 나아가 불교 이전의 인도철학 사상까지 담고 있다. 아놀드 군스트(Arnold Kunst)는 『능가경』에는 당시 인도철학파인 느야야 학파(Nyaya). 바이세시카 학파(Vaisesika), 상키야 학파(Samkhya)는 물론이고 유물론자까지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능가경』에서는 대혜보살(大慧菩薩, Mahamati)과 부처님 사이의 108문답을 다루고 있다. 부처님께서 백팔구를 설하신 내용은 불교의 거의 모든 교리를 망라하고 있다.

다섯 가지 법(五法)과 세 가지 자성(三自性)

여덟 가지 식(八識)과

두 가지 무아(二無我)

이 모두가 마하연(摩訶衍, 대승)에 포함된다.

이 게송에서 설하고 있는 바와 같이 『능가경』은 대승불교의 모든 법을 총괄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설하고 있는 오법과 삼자성, 팔식, 이무아 등 대승법은 중관학파와 유가행파라는 학파적 분리가 일어나기 전에 확립된 교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중관학파와 유가행파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것을 지적된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의 결론은 『능가경』이 불교 사상들을 총망라하고 있지만,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와 같이 『능가경』이 대승법을 다양하게 포괄하고 있으므로 이 경전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의 지적도 가능하다. 불교 여러 학파의 교설을 풍부하게 채택하여 혼합시켰으므로, 여러 교설이 어떻게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결부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능가경』은 매우 중요시되는 경전이다. 『능가경』은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을 융합한 최초의 경전으로 잘 알려져 왔다. 근거로는 『능가경』에서 ‘아뢰야식’과 ‘여래장’을 동일시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후 중관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진행되었고, 나아가 선사상과 관련이 있는 경전이라는 연구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본고의 주제인 『능가경』과 수행론을 벗어나므로 『능가경』의 사상사적 위치에 관해서는 개략적인 검토에 그친다.

먼저 『능가경』의 유식 사상과 관련된 부분이다. 『능가경』은 1956년 B. 난지오(Nanjio)가 네팔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 원전을 편집하여 『범문 입능가경(梵文入楞伽經)』을 출간한 이래 대부분 일본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졌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다카사끼 지키도(高崎直道), 야스이 고우사이(安井廣濟), 도키와 기신(常盤義伸) 등이다. 이들은 『능가경』을 유가행파를 위한 경전이라는 전제로 연구해 왔다. 이 경전을 세친(世親)과 관련지어 고찰한 연구들도 있다. 앞에서 지적하였으나 유가행파의 삼성설(三性說)을 연구한 아케 보퀴스트(Āke Boquist)는 무착과 세친의 주요 저술들에 능가경 의 이 나타나지 않고, 『능가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스티라마티( Stiramati, 安慧, 510∼570?)도 『능가경』을 인용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또한 람버트 슈미트하우젠도 『능가경』이 『유식삼십송』의 두 송을 인용하는 것을 지적하여 이 경전이 세친보다 늦게 편찬된 유가행파 관련 경전이라고 보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능가경』 제1품의 내용은 먼저 식(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오법·삼자성·이무아 등을 다루었다. 팔식을 더하면 바로 『능가경』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논제들이다. 여기서 ‘이무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세친을 중심으로 하는 유식 사상 전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능가경』은 유가유식행파와 관련이 있는 경전이다. 앞 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초기 연구자들은 『능가경』이 세친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았다. 이 경우 『능가경』은 유식사상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경전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경향은 『능가경』이 세친 이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본고는 후자의 입장에 있다. 결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 결론에 의하면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능가경』은 계모에 비유될 수 있다. 『능가경』은 유식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나 거기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전이다.

『능가경』은 일찍부터 여래장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경전으로 알려져 왔다. 여래장이란 tathāgata-garbha)의 의역이다. 모든 중생의 탐심과 분노심 등의 번뇌 안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자성청정한 여래법신(如來法身), 즉 중생 안에 감추어진 여래의 인(因)을 가리킨다. 번뇌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자성청정심을 가리킨다. 여래장 사상은 원시불교 이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및 진리와 사물을 동시에 의미하는 법의 개념, 부파불교의 심성론 중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 그리고 초기사상인 반야공관설(般若空觀說)을 사상적 배경으로 태동하였다. 이밖에 『화엄경』의 미진함천(微塵含千)−하나의 작은 티끌에 삼천대천세계, 즉 전 우주가 포함되어 있다는 비유, 『볍화경』의 일승(一乘) 사상 등이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여래장 사상은 비교적 후대에 성립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래장 사상은 여래를 내장(內藏)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중생의 청정(淸淨)한 본마음을 가리킨다. 이를 공(空)여래장이라고도 한다. 여래장은 여래의 태(胎)를 가리킨다. 인간은 본래 여래가 될 요인(여래의 태아), 즉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래장 사상을 최초로 논한 『여래장경(如來藏經)』으로 알려졌다. 중국 서진(西晋)의 법거(法炬, 290∼312)가 한역하였다고 전하므로 늦어도 3세기 초에는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에서는 『열반경』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다른 표현인 ‘일체중생실유여래장(一切衆生悉有如來藏)’

이라고 천명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성불의 가능성이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즉,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고 할 때, 번뇌에 둘러싸인 중생 중에 여래지(如來智) ·여래안(如來眼)을 갖춘 여래가 단좌(端坐)하고 있다.

『여래장경』을 비롯하여 초기 여래장 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에는 『부증불감경』 ·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승만경』)이 있다. 이것을 여래장사상 제1기 경전이라고도 한다. 이후 4, 5세기경에 『구경일승보성론』(『보성론』)이 저술되어 그 사상적 체계가 정립되었다. 『보성론』을 둘러싼 이 시기의 경론으로는 『대승장엄경론』 · 『불성론』 등이 있다. 이를 여래장사상 제2기 경전이라고도 한다. 그 뒤 여래장사상은 아라야식(A-laya識)의 체계에 의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고찰하는 유식설과 교섭하게 됨에 따라 해결이 어려운 인간의 현실적 마음의 문제로 폭을 넓혀갔다. 이에 속하는 경론에는 『능가경』 · 『대승기신론』 등이 있다. 이것을 여래장사상 제3기 경전이라고도 한다. 7세기 중엽 이후는 밀교(密敎)와의 결합으로 여래장 사상이 밀교화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여래장계 경론을 그 성립연대 및 사상의 흐름을 통하여 3기로 구분하는 것은 여래장사상 연구에서 일반적인 입장이다.

여래장 사상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 『보성론』이다. 이 논서는 불・법・승의 삼보와 이 삼보 출현의 원인인 여래장 또는 [불]성, 그 여래장의 현현으로서 보리, 보리가 지닌 공덕, 여래의 활동이라는 7주제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네 번째 주제인 여래장이 중심이다. 『보성론』은 ‘모든 중생은 여래장이다(sarvasattvās tathāgatagarbhāḥ)’라는 근본 명제에 따라 『여래장경』에 의거하여 논지를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