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ashok-ramaraj-E43xthrzrVE-unsplash

3. 『능가경』의 사상사적 위치{2}

종상스님(본지발행인)

『능가경』에서 여래장 사상을 설하는 것은 2품과 4품이다. 제2품은 여래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무아 여래장의 개념을 제시하여 여래장도 무아의 경지 안에 있는 것임을 밝힌 점이다. 제4품의 주된 내용은 아뢰야식이라는 여래장설을 전개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여래장을 식장(識藏)으로 보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당연한 지적이겠으나 『능가경』은 제1, 2기 여래장 경전을 바탕에 두면서도 더욱 발전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는 여래장 사상의 형성이 『여래장경』에서 처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보성론』의 입장과 다름없다. 그는 두 경전 외에도 『열반경』이 『여래장경』을 인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여래장경』과 『열반경』의 여래장 사상에 관한 공통점은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그는 여래장 사상의 근거를 더욱 구체적으로 『열반경』에서 찾는다. 그가 인용한 『열반경』의 해당 부분의 티베트어 역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어떤 비구가 『여래장대경(tathāgatagarbha-mahāsūtra)』을 설하고자 하였다.

“일체 중생에 불성이 있다(asti buddhadhātuḥ sarvasattveṣu). 그 성(性, dhātu)이 각자의 몸에 있어, 중생들은 수많은 번뇌를 멸진시키고 붓다가 될 것이다. 이챤티카(一闡提)는 제외한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설하면서도 일천제는 제외한다는 『열반경』의 여래장 사상과 달리 『능가경』에서는 일천제도 선근이 생겨 열반에 들 수 있다고 설한다. 이전의 여래장 사상에서 진일보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일천제’에 관해서는 뒤에서 논의한다).

지금까지 『능가경』의 여래장 사상에 관해 검토하였다. 굳이 비유한다면 『능가경』은 여래장 사상의 어머니이다. 좀 결례가 딜지 모르겠으나 계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능가경』이 여래장 사상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여래장 사상을 논의할 때 『능가경』을 거론하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흔히 여래장 삼부경전을 『여래장경』·『승만경』·『부증불감경』이라고 한다. 여래장사상 제1기 경전들로서 나름의 근거가 있다. 다른 예를 들면 시중에 『여래장 경전 모음』이라는 책이 유통되고 있다. 많은 대승 경전을 번역한 재가불자가 엮은 경전 모음집이다. 여기에는 『대방등여래장경』·『부증불감경』·『승만경』·『보성론』·『불성론』·『열반종요』·『대승기신론』이 실려 있다. 『능가경』이 빠져 있다. 흔히 『기신론』은 『능가경』에 관한 일종의 주석서라는 일부 선행연구의 견해가 있다. 명나라 4대 고승 중 한 명인 감산덕청(憨山德淸)의 『관능가아발다라보경기(觀楞伽阿䟦多羅寶經記)』( 『능가경관기』)에서 “(『대승기신론』의 저자-인용자) 마명(馬鳴)보살은 이 『능가경』 등 백부(百部)의 대승 경전을 종합해 『기신론』을 지으면서 중도의 뜻을 논하고 일심이문(一心二門)을 나누었으니, 이 때문에 지금 역시 그의 논을 종지로 삼는다.” “마명대사는 이 경전을 종지로 『기신론』을 지었다.”라고 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기신론』이 『능가경』을 종지로 삼았다고 지적하였다. 『기신론』이 『능가경』의 주석서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래장 경전 모음』이라는 책에서는 『기신론』이 들어가 있는데 정작 『능가경』이 빠져 있다. 이것은 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여래장 사상에서 『능가경』이 홀대받는 계모로 비유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능가경』이 중관사상과 관련된 부분이다. 인도불교사상사에서 『능가경』과 중관학파와의 관련성은 초기 중관학파에 속하는 아르야데바(Aryadeva, 250-350?)의 문헌들에서 맹아가 발견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관성은 주로 중관학파와 유가행파(Yogacara, 瑜伽行派)의 논쟁(이하 중관유가의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산발적이기는 하지만 『능가경』과 중관학파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크리스틴 린터너(Christian Lindtner)는 초기 중관학파의 연구와 『능가경』의 연관성을 주장하였다. 데이비드 칼루파하나(D. Karupahana)는 7권 『능가경』의 제1장 「라바나권청품」에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랴.”라는 구설이 『금강경』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여 『능가경』이 『금강경』 의 법과 비법에 관한 개념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같은 구절은 『금강경』뿐만 아니라 용수의 『대지도론』에도 나오는 중관사상의 핵심개념이다. 따라서 『능가경』이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능가경』의 중관사상 관련성을 논의하는 선행연구가 주목하는 교리는 이제설(二諦說)이다. 중관학의 중요한 개념인 진속이제(眞俗二諦)는 진제(眞諦, paramārtha satya)와 속제(俗諦, loka saṁvṛti satya)로 구성된 ‘두 가지 진리’를 뜻한다. ‘참과 거짓’이라는 둘이 아닌 진리 그 자체가 둘이라는 이 이제설에 대한 강조는 『중론』, 「제24품.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고찰」의 8~10번 게송에 언급되어 있다.

모든 부처님은 이제(二諦)에 의지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네.

하나는 세속제이고

다른 하나는 제일의제이네. (8)

진속이제 가운데 속제를 뜻하는 ‘로까 삼브르띠 사띠야(loka saṁvṛti satya)’는 ‘세상을 덮고 있는 진리’라는 뜻이다. ‘삼브르띠(saṁvṛti)’는 ‘삼(saṁ)’과 ‘브르(√vṛ)’로 이루어진 것으로, ‘브르’에는 ‘덮다, 감추다’ 등의 뜻과 함께 ‘멈추다, 정지하다’ 등의 뜻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자에 따라 속제를 해석한다. 진제를 뜻하는 ‘빠라마르타 사띠야(paramārtha satya)’는 ‘최고의 진리’라는 뜻이다. ‘빠라마르타’는 보통 ‘빠라마(parama)’와 ‘아르타(artha)’가 합성되어 ‘최고로 수승한 진리’ 등을 가리킨다. 『중론』에서는 진제는 물론 속제를 매우 중요시하여, “세속제란 모든 법의 자성은 공한데 세간의 전도(顚倒) 때문에 허망한 법이 발생한다. 세간에 있어서는 이것이 진실이다.“

만약 속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제일의제를 얻지 못하네.

제일의제를 얻지 못하면

열반을 얻지 못하네. (10)

『능가경』이 이제설을 체계적으로 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능가경』은 대승불교의 근본인 일체법 무자성이라는 입장에서 세간의 일체법을 관찰하면서도 소승학파뿐만 아니라 외도라고 칭하는 인도철학파들의 실유(實有)를 비판하는 논쟁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나아가 『능가경』은 비유비무 중도인 연기로 생기(流轉하는 세속세계와 지멸[還滅]하는 승의세계에서 일체법 무자성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확립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경전에 다양한 교설이 설해지고 있다고 해도 그 본적인 골자는 일체법이 무자성이라는 것을 연기의 생기와 지멸로 관찰하는 것이며, 이는 세속과 승의로 일체법이 존재하는 양상을 설하는 이제설의 근본 입장과 동일하다. 그래서 비록 『능가경』에 이제설이 체계적으로 설해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이 경전에서 대승불교의 이제설의 양상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능가경』이 중관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근거이다. 이밖에도 바바비베카의 『반야등론(般若燈論』』 25장 「열반품」을 중심으로 중관학파의 근본 교의인 이제설을 매개로 중관사상과 『능가경』과의 사상적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능가경』에 나타나는 이제설은 중관학파가 주창하는 이제설이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중관사상과 『능가경』의 사상적 관련성을 검토하였다. 논의 결과 어느 정도의 동의를 얻고 있지만, 아직 학계 일반의 동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입장은 어느 정도의 관련성에 동의한다. 우리는 『능가경』의 이제설이 『중론』 이제설의 영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강경』, 『대지도론』 등 중관사상의 영향에도 주목한다. 『금강경』은 인도에서 2세기에 성립된 공(空)사상의 기초가 되는 반야경전이다. 『대지도론』은 대승불교 초기의 고승인 용수(Nagarjuna, 龍樹, 150?~250?)가 저술한 『대품반야경』의 주석서로서 2~3세기 초에 성립되었다. 『능가경』의 성립을 가장 이른 시기인 443년으로 잡는다고 해도 길게는 3세기, 짧게는 2세기의 차이가 난다. 특히 동일한 구절이 발견되는 『대지도론』은 주석서이지만 오히려 대승불교의 ‘백과전서’라고 할 할 정도로 광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때, 역시 경전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 『능가경』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그 영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능가경』이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때, 비유한다면 『능가경』은 중관사상의 서자라고 할 수 있다. 서자이지만, 너무나 총명한 서자이다.

『능가경』의 사상적 위치를 검토하는 마지막은 선사상과 관련된 부분이다. 『능가경』의 선사상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상세하게 논의하므로 여기서는 개략적인 검토에 그친다. 『능가경』의 선사상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언술은 먼저 제2품에서 사종선(四種禪)을 설한 내용을 꼽을 수 있다. 『능가경』에서는 사종선으로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관찰의선(觀察義禪)·攀緣眞如禪)·여래선(如來禪)을 제시하여 매우 심도 있게 설하고 있는데, 중국의 선종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부분이다. 『능가경』 제3품에서 설하고 있는 불설시불설(不說是佛說)도 주목된다. 대혜보살의 확인과 부처님의 대답 과정에서 2회에 걸쳐 부처님께서는 “내가 어느 날 밤에 열반에 드는데 그 중간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말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말하지 않는 것이 곧 부처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언설의 기능과 한계를 말하는 부분으로 진리는 언어를 떠나 있는 것임을 밝히는 이 부분은 특히 일자불설(一字不說)의 입장과 맞물려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로 통한다. 『능가경』과 선사상의 관련성은 굳이 재론할 여지가 없다. 『능가경』과 선사상과의 관계성을 비유한다면 쫓겨난 생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다음 장에서 논의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능가경』이 중관과 유식, 여래장사상, 나아가 선사상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핵심 사상을 종합, 정리한 중요한 경전임을 검토하였다. 불교 사상사적 측면에서 검토한 것이지만, 『능가경』 자체의 가장 주된 사상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대혜여, 또 사문과 바라문이 모든 법을 살필 때 자기 성품이 없어 허공의 구름 같고, 빙빙 도는 불 수레바퀴 같고, 건달바성(신기루) 같고, 환(幻)과 같고, 불꽃 같고, 물속의 달 같고, 꿈에서 보이는 것 같으며, 자기 마음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무시이래의 허망한 견해 때문에 일체법이 밖에 있다고 한다.

부처님은 게송에서 “일체법은 무생(無生)이니/또한 멸함도 없어/저 모든 인연 가운데/생멸상(生滅相)을 분별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일체법은 생한 적이 없으므로 멸하지도 않는다. 등현 스님은 “이것이 바로 『능가경』의 기장 주된 사상 중 하나”라고 결론 내렸다 이 결론에는 『능가경』을 유식의 경전, 여래장의 경전, 중관사상의 경전 그리고 선사상의 경전 등으로 구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자 혹은 각 유파의 입장에 따른 분류일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능가경』은 불교의 핵심사상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경전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능가경』은 한역 이래로 중국불교의 진흥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는 물론 티베트에 이르기까지 사상사적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