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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능가경』의 보살 10지(菩薩十地) 수행론

종상스님(본지 발행인)

1) 대승 보살과 십지

『능가경』은 대혜보살이 질문하고 부처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경전임은 이미 지적하였다. 그런데 대혜보살의 질문은 다른 경전과는 좀 다르다. 정종분(正宗分) 시작과 함께 대혜보살이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나서 108가지의 질문을 한꺼번에 하는 형식이다.

제 이름은 대혜(大慧)이니

대승을 통달하고자

이제 백여덟 가지 뜻을

가장 높으신 분께 우러러 여쭙니다.

대혜보살의 말은 게송으로 정중한 듯하지만 답변해야 하는 부처님이나, 독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형식은 10권, 7권 『능가경』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후의 『능가경』 내용 전체는 이 108가지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108가지의 질문 가운데 “연각과 성문은/ 무슨 인연으로 백 번을 변하며/어찌하여 백 번을 받음[受]이 없습니까?”라는 대혜보살의 질문에 이어 다음과 같은 보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세간의 신통이고,

무엇이 세간을 벗어난 신통입니까?

무엇을 보살의 7지(七地)라고 하는지

저희를 위해 연설하여 주십시오.

보살의 7지가 무엇인가? 왜 대혜보살은 보살의 7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을까? 『능가경』에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신통력 갖춘 인중존(人中尊)/ 큰 원(願)이 모두 청정하여/삼마제(三摩提, 삼매)에서 관정하니/초지(初地)에서 10지까지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보살이 수행하여 오르는 계위에는 초지에서 10까지 있다. 위에서 대혜보살이 무엇을 보살의 7지라고 하느냐는 질문은 보살 10지 중의 제7지 계위를 가리킨다. 위 게송에서 부처님이 ’초지에서 10지까지 관정‘한다는 것은 “어떤 인연으로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는 보살마하살이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머물 때나 가장 높은 지위[勝進地]에서 관정할 때 그 신통력을 더해 주십니까?”라는 대혜보살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마업(魔業)과 번뇌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이고, 성문지(聲聞地)의 선(禪)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여래의 자각지를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얻은 법을 증진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까닭에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 모두 신통력으로 모든 보살마하살을 건립하는 것이다.

만일 신통력으로 건립하지 않으면 외도의 악견과 망상에 떨어지고, 성문과 여러 악마가 원하는 데로 떨어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부처님 여래가 신통력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을 거두는 것이다.”

부처님이 십지를 관정하는 이유는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외도의 악견과 망상에 떨어지고, 성문과 여러 악마가 원하는 데 떨어져 무상정각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보살과 수행론을 검토한 결과, 보살은 깨달음을 구해서 수도하는 구도자로서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하였다.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 것을 자원하여 일체의 중생을 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로 비유된다. 보살이 수행할 때는 각 단계마다 그 계위가 주어진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보살의 단계로서 초발심(初發心, 최초단계로 진리를 추구함), 행도(行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함), 불퇴전(不退轉, 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 한 생이 끝나면 다음에 부처가 됨)의 4단계가 있다. 이것이 이 장에서 울피가 논의하게 될 보살 십지로 정리된 교리이다. 따라서 십지설은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성불이라는 과보를 얻기까지의 수행 과정을 열 단계로 정리하여 조직한 실천 수행도(修行道)이다. 이 십지설은 인도 대승불교사상사의 최초의 발생 단계에서 완성 단계까지 그 중심에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살 사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육바라밀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십지사상이다. 전자가 보살이 닦아가는 보살도에는 어떠한 수많은 보살만행으로 중생을 구제하는가 하는 내용적인 면이라면, 후자는 보살이 어떤 근본이념과 사상구조 그리고 실천체계로 성불을 향해 나아가는가 하는 계위와 구조적인 면이다. 이러한 보살 사상은 시대와 경전의 변천에 따라 그 근본이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용과 사상구조, 실천체계에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십지설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문헌자료는 『대사(大事, Mah󰐀vastu)』이다. 이 자료에서는 대사 십지(大事十地)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이 문헌은 B.C.2세기경에 대중부 계통인 설출세부(說出世部)에서 율장을 발췌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범문 불전이다. 이 문헌에는 십지의 명칭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설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매우 소박한 형태의 십지설에 지나지 않았다. 석가보살의 수행 계위로서의 십지가 아니라 이미 일반화된 보살계위로서 설해져 있다. 십지의 명칭은 ①난증지(難登地) ②결만지(結慢地) ③화사지(華飾地) ④명휘지(明輝地) ⑤광심지(廣心地) ⑥구족지(具足地) ⑦난승지(難勝地) ⑧생연지(生緣地) ⑨왕자위지(王子位地) ⑩관정위지(灌頂位地) 등이다. 이 십지설에서는 어떤 통일적인 서술이나 각 행위의 전후가 명확한 순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지에서 2지로, 2지에서 3지로…, 점차 향상되어 가는 조직 구조로 되어 있다. 십지의 발전된 형태는 『반야경』 등의 대승 경전이 발달하여 ‘반야십지(般若十地)’ ‘본업십지(本業十地)’ 등이다. 이 반야십지는 대승 십지설에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반야십지는 부파의 십지설을 계승하면서 대승 특유의 보살도로 발전하였다.

반야십지에는 무명십지(無名十地)와 유명십지(有名十地)의 두 종류의 십지설이 있다. 구마라집역

『대품반야경』 제20 「발취품」에는 두 가지 십지가 설해져 있다. 하나는 초지․2지․3지…10지 등과 같이 단지 숫자로만 설명되어 있다. 또 하나는 건혜지(乾慧地)․성지(性地)․팔인지(八人地)․견지(見地)․ 박지(薄地)․이욕지(離欲地)․이작지(已作地)․벽지불지(辟支佛地)․보살지(菩薩地)․불지(佛地) 등의 명칭이 있는 십지가 있다. 두 십지 중에서 내용이 자세히 언급된 것은 무명십지이다. 십지설은 화엄십지(華嚴十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 명칭과 내용이 순수한 대승 보살의 수행도에 상응하여 발전하게 된다.

비유하면 일체의 문자는 모두 초장(初章)에 포섭되고, 초장이 근본이 되기 때문에 어떤 문자도 초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불자님 십지는 모든 불법의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이 십지를 구족하고 행하는 보살은 일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님 그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부처님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신력을 주어 그 들은 것을 믿고 받들어 깨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60권 『화엄경』에서 해탈월(解脫月)보살이 금강장(金剛藏)보살에게 십지법문을 간청하면서 ‘십지’에 대한 전체적인 이치를 밝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화엄십지는 모든 불법의 근본이 되고, 십지를 구족하면 일체 지혜를 증득할 수 있다. 이처럼 60 『화엄』은 「십지품」 서두에서 화엄십지의 중요성과 그 위치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반야십지가 삼승(三乘)이 공유하는 십지라고 할 때, 화엄십지는 보살만의 십지로 차별화된다. 화엄십지의 광대무변한 보살행은 마침내 십바라밀로 체계화되어 대승보살도를 완성하게 된다. 『반야경』이 육바라밀을 대승 보살의 수행실천도로 강조하였다면, 『화엄경』은 십바라밀로서 모든 보살도를 포섭하고 있다.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각 지위에 하나씩 바라밀을 배당하고 있는데, 십지와 십바라밀은 둘이면서도 하나인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이다. 각 지위에서 설하는 보살행이 모두 십바라밀을 포함하고 있지만, 특히 화엄십지에서는 치우쳐 닦는 바라밀을 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