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서 찾아낸 실존…日설치미술가 시오타 지하루 개인전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며 작품 활동"…9월 7일까지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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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지하루의 작품 세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시오타 지하루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5.7.25 ryousanta@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흙에서 솟아난 검은 실이 전시관 전체로 치렁치렁 뻗어간다. 작가는 흙으로 상징되는 지구에서 생성된 생명이 우주 전체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설치미술로 구현했다.

실을 사용한 작품으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본의 설치미술가 시오타 지하루가 2022년 이후 3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는 두 번의 암 투병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실존과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 20여점을 전시한다.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2층 3전시장에 설치된 '리턴 투 어스'다. 전시회 이름과 같은 이 작품은 25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적 여정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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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하는 시오타 지하루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시오타 지하루 작가가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시오타 지하루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25 ryousanta@yna.co.kr

25일 전시 프리뷰 행사에서 공개된 '리턴 투 어스'는 관람객을 압도하는 크기의 작품이었다. 혈관이나 나뭇가지처럼 서로 얽혀 뻗어 나가는 검은 실이 257.8㎡ 크기의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행사에 참석한 시오타는 "우주를 상징하는 검은 실이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며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창작했다"고 소개했다.

우주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검은 실들의 연결은 생명의 재생과 순환을 의미한다. 시오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다른 이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연결'이라는 단어에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이번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시오타는 이번 작품이 유화로 시작해 설치미술로 자리 잡은 자신의 예술 행보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젊은 시절 그린 그림에서 누군가를 모방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정작 나의 정체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면서 "회화를 그만두고 시작한 설치미술에서는 드로잉을 하듯이 입체적인 현실의 공간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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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 소개하는 시오타 지하루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시오타 지하루 작가(가운데)가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시오타 지하루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7.25 ryousanta@yna.co.kr

지난해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전시된 시오타의 대표작 '셀' 연작도 만날 수 있다. 유리로 인간의 장기 모형을 만든 뒤 모세혈관과 같은 빨간색 철사로 감싼 작품으로, 2017년 암이 재발해 죽음과 마주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투영됐다. 시오타는 "암이 재발한 뒤 내 몸 안에 장기가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해봤다"며 "(암에 걸린) 장기를 나의 존재와 직접 관련짓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면서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작가가 20대 시절 마지막으로 그린 3점의 유화도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개별 유화 작품을 전시회에 내놓은 적은 있지만, 3점을 한꺼번에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오타는 "전시관에 걸린 제 유화들을 보면서 더는 회화를 지속할 수 없었던 당시의 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며 "왜 회화를 그만두고 설치 작품의 세계로 넘어가게 됐는지를 새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두 번의 항암 치료를 견뎌낸 작가는 한국인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일상의 삶을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술을 하지 않는 것이 곧 죽음"이라며 왕성한 창작 의지를 드러냈다. 시오타는 "베를린에서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김치를 담가주는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며 "이제는 24시간 내내 작품 생각만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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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지하루의 작품 세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시오타 지하루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5.7.25 ryousanta@yna.co.kr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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