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annie-spratt-OETHwXjfCzQ-unsplash



■박말임 수필

노인의 집착은 욕심이 아니라 마지막 자존심이다

길을 걷다 은발이 잘 어울리고 기품이 묻어나는 노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고액 연금으로 생활하거나 재산이 넉넉한 노인들이 대체로 여유로워 보이고, 때로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경제적 여유는 피부과 치료나 성형시술로 세월의 흔적을 늦추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젊음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하지만 안락한 노후를 누리는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다수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혹은 평생 몸에 밴 습관 때문에 여전히 일터를 찾는다. 누군가는 오늘 하루의 밥벌이를 위해, 누군가는 쉴 줄 몰라서, 또 어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일하러 나선다.

청주의 육거리 시장에는 채소를 파는 한 할머니가 있다. 본인의 4층짜리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도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시장에 나온다. 호박과 가지를 사며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 이제 편히 사셔도 되잖아요. 왜 굳이 이 고생을 하세요?”

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집에 앉아 있으면 뭐해요. 여기 나오면 단골들하고 얘기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여기 나와야 사는 것 같아~”

그분에게 시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삶의 터전이자,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이고, 살아 있다는 증표다. 어쩌면 그분은 시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고요히 숨을 거두는 삶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런 삶 앞에 ‘욕심’이라는 말을 들이대는 건 큰 실례다.

내가 운영하는 복지센터에는 청소와 배식을 도우러 오는 시니어들이 있다. 대부분 생활이 빠듯한 분들이다. 이런 단순 노인 일자리마저 경쟁이 치열하다. 작년에 일했던 어르신이 올해는 경쟁에서 밀려 탈락하자 “일 좀 하게 해달라”며 부탁해 오셨다. 노인 일자리 하나가 그분들에겐 삶의 활력이며 생계의 버팀목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도 이 무더위에 쉬지 못한다. “며칠 쉬셨다 하시지요?”라고 말을 건네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여기 내가 맡은 구역이야. 며칠 비우면 다른 사람이 차지해버려. 단골 슈퍼에서도 매일 안 가면 다른 데 줘버려.”

이 일 또한 그분들에겐 ‘작은 사업’이자 삶의 질서이자 자존감이다.

시골은 조금 사정이 낫다. 직접 가꾼 푸성귀로 끼니를 해결하고, 정부의 기초연금과 공공 일자리 수당으로 전기세와 공과금을 낸다. 그래서 시골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 못 살아보고 죽으면 억울하지.”

그럼에도 뉴스에서는 여전히 노인 자살률 1위, 극빈 노인의 고독사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병원비와 간병비 때문이다.

생로병사 중 ‘병’은 노년의 몫이다. 현재 70세 이상 노인의 다수는 실손 보험이 없다. 예전에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으면 보험 가입 자체가 어려웠다.

우리 셋째 언니도 당뇨병 진단을 20년 전 받아 지금껏 실비 보험을 들지 못했다. 의료기술은 발전했지만, 비급여 항목은 늘어나 병원비와 간병비가 노인과 가족을 순식간에 빈곤으로 몰아넣는다.

우리 큰 올케 간병비로 한 달에 450만 원을 지출했다. 주차비, 식비 같은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500만 원이 넘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생을 마감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현실이 슬프다.

노인이 노인을 향해 “욕심이 많다”고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그들은 왜 여전히 일터로 나오는가. 왜 무더위에도 폐지를 줍는가. 왜 시장 바닥에 앉아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하는가.

그 물음의 끝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노인의 집착은 욕심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을.

◇◇◇

박말임 수필가


□작가 소개

·현재 청주 복대동에서 지역아동센터 운영

·1995년1월 월간 ‘수필문학’지 (수필가)등단.

·네이버 브런치 작가 /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음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water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