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소외된 이들 이야기…몸과 마음 다 바쳐 도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내달 개막…김병철·이상윤·최민호 출연
데뷔 66년 만에 첫 소극장 무대…"젊은 연극인 처우 개선 위해 노력"
X
기자간담회 참석한 박근형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배우 박근형이 19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8.19 scape@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사회에서 소외돼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올해로 데뷔 66년을 맞은 배우 박근형(85)에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황혼기에 접어든 연기 인생을 다시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박근형은 19일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아서 뭐든지 다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미국 배우 겸 극작가 데이브 핸슨이 사뮈엘 베케트의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코미디극이다. 무대 뒤 허름한 분장실을 배경으로 연출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두 명의 대기 배우(언더스터디) 에스터와 밸이 엉뚱하면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지난 9일까지 선배 신구와 함께 전국을 돌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선보였던 박근형은 이 연극에선 무대에 오를 순간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대기 배우 에스터 역으로 출연한다.
박근형에게 이번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미처 채우지 못했던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그는 "작품 속 에스터와 같이 사라져가는 노배우가 어쩌면 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저 배우가 이번엔 저 역할에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으니 (제 연기를) 기대해 주셔도 좋다"고 말했다.
X
인사말하는 박근형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배우 박근형이 19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8.19 scape@yna.co.kr
1959년 연극으로 데뷔해 TV 드라마와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에 열정적이었던 박근형이 소극장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 공연예술의 근간이 돼 온 대학로 소극장 연극에 경의를 표하면서 젊은 연극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근형은 "영상 콘텐츠에 밀려 어딘가에서 사라져 없어진 것으로만 알았던 소극장 연극이 여기 대학로에 모여서 불태우고 있었다"며 "대학로의 젊은 연극인들이 제가 젊었을 때 겪었던 어려움을 그대로 겪고 있는 것 같다. 그걸 깨뜨리는 작업을 생명을 다할 때까지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근형은 창작 작품이 사라져가는 한국 연극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가 잘 알려지는 가운데 유독 연극은 남의 나라 희곡만 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큰 상금을 걸고 창작 희곡을 모아 극장에서 공연하고, 그 수익을 작가에게 배분해주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에스터 역에는 배우 김병철이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한다. 2016년 연극 '날 보러와요' 이후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김병철은 "에스터는 제대로 된 기회를 갖지 못해 대기 배우를 전전하다가 밸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인물"이라며 "그런 인물 특성에 맞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X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주연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9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 최민호(왼쪽부터), 박근형, 김병철, 이상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8.19 scape@yna.co.kr
또 다른 대기 배우 밸은 배우 이상윤과 그룹 샤이니 최민호가 연기한다. 지난해 배우 이순재와 함께 초연에 출연했던 최민호는 두 시즌 연속으로 작품에 함께한다. 최민호는 "작년에는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 이슈로 공연을 완주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며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번 재연에서는 조금 더 명확하고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밸을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한 오경택이 박근형과 함께 이번 연극에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오경택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상징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현실판이라고 할만하다"며 "(전작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를 그려내겠다"고 강조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다음 달 16일부터 11월 16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만날 수 있다.
hy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