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최태원-노소영 1.4조 재산분할 깼다…'세기의 이혼' 원점(종합2보)
'노태우 비자금' 불인정 "불법원인급여 법적보호 못받아"…"지원됐어도 분할대상 아니고 권리주장 안돼"

"'崔 처분재산'은 분할대상서 제외"…이혼·위자료 20억 확정…崔 SK주식 '특유재산' 여부는 판단 안해

대법 취지 따라 파기환송심은 '盧비자금'·'최태원 처분재산' 빼고 분할비율 조정해야…액수 줄어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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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최태원-노소영 1.4조 재산분할 파기환송 (서울=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4.12.17 [연합뉴스 자료사진] ondol@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최태원(65)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1조3천억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깨졌다.

대법원은 최 회장의 상고를 받아들여 SK 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을 전제로 한 2심 판단을 파기했다. 이는 민법상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봤다. 불법 원인으로 재산을 지급받았다는 의미로, 불법성·반사회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으며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재산분할에 고려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다만 비자금 실체는 판단하지 않았다. 있든 없든 어느 경우에도 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아울러 최 회장이 SK 그룹 경영 과정에서 증여·처분한 주식이나 돈은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에 관련된 것으로, 사실심(2심) 변론종결일 기준으로 이미 처분해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혼을 앞두고 '재산 빼돌리기' 등을 하는 경우 분할대상에 넣는 게 하급심 판결은 많이 있어왔다. 이 사건에서 최 회장이 경영권 유지나 경영 활동 차원에서 제3자에 처분한 재산을 분할 대상에 넣을 수 없다는 기준이 대법원 판례를 통해 처음 제시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원고(최 회장)는 피고(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천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은 재산분할 부분과 관련해 서울고법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역대 최대 규모인 위자료 20억원에 관해서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해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된 '노태우 비자금'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비자금이 실제로 존재해 SK 측에 전달됐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자금'이므로 재산 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민법 746조를 들어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에서도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청구를 배제한 조항의 입법취지는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즉, 노태우 비자금은 뇌물이라는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해 생겨난 급여이므로 이런 부당이득에 대한 반환 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고, 이는 상속 재산 분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왔으나,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을 뿐더러 그와 같은 행위는 전체 법질서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이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를 포함해 어떠한 형태로든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못박았다.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혼에 의한 재산분할에서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의 재산 형성 또는 유지에의 기여를 피고의 기여로 참작할 수 있다면, 노태우의 기여 내용으로서 자금 지원 행위의 불법성 역시 피고의 기여 주장에 함께 참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노태우의 금전 지원을 피고(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한 것은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2심 판결 중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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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상고심서 파기환송 판결…다시 2심으로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가 파기환송으로 판결이 난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최 회장 측 소송대리인단인 민철기(왼쪽부터)·이재근 변호사가 판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5.10.16 hwayoung7@yna.co.kr

대법원은 아울러 최 회장이 처분해 보유하고 있지 않던 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한 2심 판단도 잘못됐다고 봤다.

최 회장은 2014년 8월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에 SK C&C 주식 9만1천895주를, 같은 해 10월 최종원 학술원에 SK주식회사 주식 20만주를, 11월에 친인척 18명에게 SK주식회사 주식 329만주를 증여했다. 또 2012년께부터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 SK그룹에 대한 급여 반납 등으로 927억7천600만원을 처분하고, 최 수석부회장의 증여세 246억원을 대신 납부했다.

2심은 해당 부분 가액을 1조1천억원으로 산정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총 재산분할 대상은 4조원 규모였다.

혼인관계 파탄 후 어느 한쪽이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 없이 재산을 처분했다면 이를 2심 변론종결일에도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2심 변론종결 때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를 분할 대상으로 넣을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고의 재산 처분은 원심이 인정한 혼인관계 파탄일인 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이뤄졌다"며 "원고가 SK그룹 경영자로서 안정적인 기업 경영권 내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행한 것으로, 원고 명의 SK 주식회사 주식을 비롯한 부부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9월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나 파경을 맞았다. 2015년 최 회장은 언론을 통해 "노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면서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렸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협의 이혼을 위한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2018년 2월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식 소송에 들어갔다.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냈다.

2022년 12월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지난해 5월 양측 합계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보고 그중 35%인 1조3천808억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주라며 재산분할 액수를 대폭 상향했고 20억원의 위자료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분할 비율은 최 회장 65%, 노 관장 3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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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재산분할 파기환송 16일 서울 종로구 SK 사옥 모습. 2025.10.16 seephoto@yna.co.kr

이날 대법원이 '노태우 비자금' 부분을 문제 삼아 재산분할을 다시하라고 판단하면서 '세기의 재산분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파기환송심을 담당할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단 취지에 따라야 한다. 우선 대법원 판단에 따라 1조1천억원 규모로 알려진 최 회장의 처분 재산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노태우 비자금 부분을 노 관장 기여 요소에서 제외하라고 한 만큼 기여분(비율)은 새로 산정해야 한다.

최 회장이 주장해 온 'SK 주식은 특유재산'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법률심인 대법원은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고이유 중 ▲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금전(비자금) 지원을 통한 기여 ▲ 최태원 회장이 제3자에게 증여하는 등으로 처분한 재산의 보유 추정 ▲ 재산분할 비율 ▲ 위자료 등 4가지 부분에 관해선 이날 판단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나머지 상고 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한다"라고 밝혔다. 즉 특유재산에 관한 판단은 생략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재차 '특유재산' 여부가 쟁점이 될 수도 있다. 최 회장은 SK(옛 대한텔레콤) 지분이 선친에게서 상속·증여받은 자금으로 인수한 것이므로 명백한 특유재산이며 이 부분에 노 관장이 관여할 여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노 관장 측은 부부 공동재산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소송은 최 회장 측은 상고심에 오면서 새로 맡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홍승면 변호사와, 홍 변호사와 가까운 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송무대표 이재근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법무법인 율촌이 대리했다. 홍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수석 수료하고,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 이어 수석재판연구관까지 모두 지낸 법리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이 변호사는 행정처 민사심의관·사법지원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노 관장 측에서는 법원장을 거쳐 감사원장을 역임한 중량급 법조인인 최재형 전 의원이 소송대리인으로 나섰다.

현재 법원 실무를 고려하면 파기환송심은 두달 가량 뒤부터 본격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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