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창 한번 해볼까요?"…조용필 등장에 2만석 고척돔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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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복 80주년 '이 순간을 영원히'…'가왕' 57년 히트곡 28곡 열창
"TV 출연에 좀 떨려…앞으로도 계속 노래할 것"…10월 6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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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그 언젠가 나를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 오늘따라 왜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지난 6일 서울 시내 최대 실내 공연장인 고척스카이돔에서 1만8천명의 관객이 한목소리로 '가왕'(歌王) 조용필(75)의 히트곡 '단발머리'를 따라 불렀다.
조용필이 쩌렁한 보컬 사이로 "자 여러분 같이 합시다!"라고 외치자, '오빠·형님 부대'는 떼창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를 지켜보던 가왕은 만족한 듯 "좋아요!"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한 KBS 대기획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 콘서트에서다.
조용필은 1992년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콘서트 무대에 집중해왔다. 이후 '가왕'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드물게 전파를 탔다. 데뷔 50주년이던 2018년 일부 방송에 출연했지만, 공연 무대는 2008년 SBS에서 40주년 콘서트가 방송된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가왕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염원 같은 이벤트였다.
조용필은 이날 1970년대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지난해 발매한 정규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까지 28곡을 열창하며 57년 음악 인생을 되짚었다.
그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오프닝 영상에 이어 '미지의 세계'를 부르며 무대에 등장했다. 선글라스에 흰색 셔츠와 베스트를 차려입은 그는 기타를 연주하며 힘 있는 보컬을 들려줬다. 고음에서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고서 온 힘을 끌어올려 소리를 뱉었고, 이후 고개를 살짝 젖힌 채 몸을 들썩이며 리듬을 탔다.
조용필과 30년 넘게 호흡을 맞춘 밴드 '위대한 탄생'은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육중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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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마다 감각적인 연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한 가왕은 이날도 현란한 레이저 조명,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LED 영상, 무료로 배포한 응원봉 중앙 제어를 통해 음악과 빛의 하모니를 선사했다.
조용필은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를 때는 두 팔을 '착' 벌리고 "얘들아∼"라고 외쳤고, '그대여' 간주 부분에서는 기타를 연주하는 노련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네 곡을 내리 부르고서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라며 "오늘 이렇게 뜨겁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저 많이 변했죠?"라며 "KBS에 출연하는 것은 1997년 이후 28년 만이다. 아마 (젊은 관객은) 태어났을 즈음이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와 주셔서 대단히 고맙다. TV 출연이라고 하니 좀 떨리기도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용필은 관객을 향해 "제가 지금까지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사하다"며 "저는 앞으로도 계속 노래할 것이다. 하다가 정 안 되면 좀 쉬었다가 나오면 된다"고 말했다.
공연명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를 언급하고는 "여러분과 같이 있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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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에서는 팝, 록, 발라드부터 오페라 록과 판소리까지 아우른 조용필의 음악 이력처럼 다채로운 장르의 히트곡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창밖의 여자', '촛불' 무대에선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꿈'과 '바람의 노래' 같은 가슴 뭉클한 히트곡에선 거뜬하게 고음을 소화했고, '태양의 눈'과 '아시아의 불꽃'처럼 고난도의 강렬한 록도 지친 기색 없이 몰아쳐 감동을 안겼다.
'어제, 오늘, 그리고' 노랫말은 마치 광복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처럼 들렸다.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조용필은 객석의 환호에 "여러분과 같이 노래하니 너무 좋다. 멋지고 아름답다"며 "오래도록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공연 도중 공개된 VCR 영상을 통해 반세기 넘도록 음악에 매진하며 느낀 소회도 들려줬다.
그는 대중음악 시상식 대상과 음악 프로그램 1위 트로피를 연달아 거머쥔 1980년대를 회상하며 "제가 제일 바빴고, 또 많은 것을 얻었던, 조용필을 만들어준 게 1980년대"라며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노래할 수 없다. 어느 순간 팬들이 (조용필을) 만들어줬고, 제가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2013년 가요계를 들썩이게 한 '바운스'(Bounce) 열풍에 대해서는 "깜짝 놀랐다"며 "60이 넘은 나이에 '뮤직뱅크' 같은 방송에 (1위로) 제가 나왔으니까. 그때 술도 한잔했다. 물론 지금은 끊었다"고 웃음 지었다.
"공연이 즐겁고 위로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는 관객과의 호흡에 적극적이었다. '허공'을 부르기에 앞서 "여러분과 정식으로 떼창을 한 번 해볼까 한다"며 호응을 유도했고, 함께 노래하는 관객을 향해 "굿!"이라고 외쳤다. 쓸쓸함을 품은 '그 겨울의 찻집'에선 상념에 잠기듯 집중하다 큰 박수를 보내는 팬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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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공연은 후반부로 치달아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대표곡 '모나리자'에선 모든 관객이 기립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바운스'·'여행을 떠나요' 등 앙코르 무대에선 팬들이 남은 에너지를 소진하겠다는 듯 환호했다. '쾅쾅' 울리는 밴드 사운드의 진동이 객석까지 전해질 정도로 장내 열기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거센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도 고척돔 인근은 '가왕'을 맞이하러 온 남녀노소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팬들은 '오빠!'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거나 '땡큐 조용필!', '남편보다 조용필' 등 재치 있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서 삼삼오오 들뜬 표정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방미영(51) 씨는 학창 시절 조용필을 좋아하던 사연을 보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 이곳을 찾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Q'를 처음 듣고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처음으로 조용필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들었다"며 "사춘기와 20대 시절을 조용필의 노래로 치유 받고 버텨냈다. 그러한 시간이 지나고 지금 이곳에 와 있다니 굉장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와 함께 관람한 직장 동료 박민숙(59) 씨는 "조용필은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에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을 하신 분으로, 광복 80주년 기획에 그 누구보다 어울렸다"며 "우리 곁에서 늘 건강하게 앞으로도 좋은 노래를 들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김모(67) 씨는 "제일 좋아하는 곡이 '바람의 노래'였는데, 조용필과 한 공간에서 같이 부를 수 있어 가슴이 벅찼다"며 "다들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나중에는 목이 쉰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조용필-이 순간을 영원히'는 추석 연휴인 다음 달 6일 KBS 2TV에서 방송된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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