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부녀 16년만에 재심서 무죄…"위법수사"(종합)
광주고법 "적법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검찰 증거물 전면 불인정
문맹·경계성 지능인 부녀, 진술거부권 등 기본 권리조차 보장 못 받아
당시 1심 무죄서 2심 유죄로 번복돼 15년 '억울한 감옥살이'…검찰 "상고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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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하는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피고인 부녀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고인들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연 기자회견에서 환호하고 있다.
부녀는 2009년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타 배우자이자 친모 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지난해 재심 개시가 결정돼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0.28 daum@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중형을 선고받았던 부녀(父女) 관계 피고인들에게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심 재판부는 문맹 또는 경계성 지능인인 부녀에게 행해진 검찰 수사가 위법했다며 범행 자백 등 주요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광주고법 형사2부(이의영 고법판사)는 28일 살인 및 존속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75)씨와 딸(41)의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 사건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자백이 검찰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검찰은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의자 신문조서와 관련 진술을 주요 증거로 제출했지만, 적법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직접적인 목격자가 없는 이번 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검찰에 넘겨졌다.
재심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은 증거들은 딸의 최초 자백, 아버지와 공모했다는 추가 자백, 이에 기초한 A씨의 자백,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가 아내이자 어머니인 피해자를 살해한 동기였다는 별건 자백 등 피고인들의 진술이다.
이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던 원심의 주요 근거이기도 했는데, 재심에서는 검찰의 유도신문에 의한 진술 등을 이유로 증거에서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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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무죄'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사건 발생 1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피고인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부녀는 2009년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타 배우자이자 친모 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지난해 재심 개시가 결정돼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0.28 daum@yna.co.kr
재심 재판부는 초등 2학년을 중퇴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A씨, 지능지수 74점 정도의 경계성 지능인인 딸이 각각 장시간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의 압박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또 진술거부권, 변호인 또는 신뢰관계인 동석권, 조서 열람 및 변경 청구권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은 검찰 수사가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조서의 증거 능력을 두고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을 명시한 2007년 개정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재심 재판부는 경찰 측 첩보에 근거해 부녀를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수사 담당 검사의 증언 또한 허위하고 판단했다.
첩보 제공자로 지목된 경찰관(현재 퇴직)은 재심 공판에 출석해 "검찰에 관련 첩보를 제공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밖에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물의 미제출, 현장검증에서 재현한 청산가리 투여량과 정밀 분석을 통해 추산한 실제 희석량 간 차이 등을 무죄 판결에 참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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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A씨 등은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주민들이 나눠 마시게 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피고인들은 사망자 가운데 1명의 남편과 딸이다.
검찰은 근친 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부녀가 아내이자 친모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공모했다고 결론 내려 재판에 넘겼다.
1심을 맡았던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당시 재판장 홍준호)는 '진술 신빙성' 문제 등으로 2010년 2월 무죄를 판결했다.
2심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1부(당시 재판장 이창한)는 1심을 뒤집어 이듬해 11월 중형을 선고했고, 2012년 3월 대법원이 광주고법 판결을 인정해 형이 확정됐다.
'재심 전문'으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A씨 부녀가 '위법 수사'로 만들어진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광주고법은 지난해 1월 검사의 직권남용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같은해 9월 재심 개시를 확정하면서 재판은 부녀에게 유죄를 선고한 2심으로 다시 돌아갔다.
A씨 부녀는 검찰의 긴급체포에 따른 구속 기간부터 지난해 재심 개시 결정으로 풀려나기까지 만 15년씩을 감옥에서 보냈다.
재심 전문 변호사의 위법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더라면 이들 부녀는 검찰과 법원에 의해 '패륜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혀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검찰은 재심의 무죄 판결에 대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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