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파주 광탄면 장지산 자락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야를 사로잡는 것은 절집의 기와 지붕이 아니다. 국도 78번을 따라 걷거나 차를 몰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산등성이 위로 높이 솟은 거대한 두 불상의 윤곽이 드러난다. 바로 보물 제93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일명 ‘쌍미륵’이다. 먼 길을 오가던 이들에게는 자연이 만든 이정표이자 신앙적 표상이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순례자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문장이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의주대로가 남긴 국제 교역로의 기억
용암사가 자리한 장지산은 조선 시대 한양에서 의주·연경으로 향하는 의주대로의 주요 길목이었다. 문물과 사신, 상인들이 이 길을 오가며 조선의 사상과 문화가 이동했고, 이정표 역할을 했던 쌍미륵은 자연스럽게 길 위의 사람들에게 휴식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17m에 달하는 거불 두 기는 겨울이면 산 능선을 따라 명확한 윤곽을 드러내고, 여름에는 솔숲 사이로 은은히 그 모습을 비추며 순례자의 시선을 이끈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고려 왕실의 발원 설화가 깃든 쌍미륵의 기원
용암사의 창건을 설명하는 전승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려 제13대 선종과 관련된 설화이다. 아들이 없어 근심하던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에 불상을 새기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이르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왕의 명으로 바위에 두 불상이 새겨졌고, 뒤이어 원신궁주는 왕자 한산후를 낳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승은 오늘까지 이어져 이곳이 ‘득남 기도처’로 불리게 된 배경이 되었다. 전설의 진위를 떠나, 이 지역이 고대로부터 왕실과 민간 모두의 기원과 신앙이 교차한 장소였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자연암을 몸으로 삼고 머리를 얹은 ‘병립형 거불’
쌍미륵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암을 그대로 몸체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암벽을 그대로 불신으로 삼고, 그 위에 목·불두·보개(갓)는 따로 조각하여 얹었다. 앞에서 보면 두 불상이 바위에서 막 솟아오른 듯하며, 뒤로 돌아가면 몸과 머리가 다르게 구성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왼쪽 불상은 둥근 보개를 쓰고 연꽃 혹은 용화수를 높이 들고 있어 남성 미륵불로 해석되며, 오른쪽 불상은 네모난 보개를 쓰고 합장을 하고 있어 여성적 형상의 미륵보살로 이해된다. 두 상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따스히 내려다보는 부부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여 ‘쌍미륵’이라는 이름을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작은 절집과 거대한 석불이 만들어낸 독특한 대비
용암사 경내는 비교적 아담하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보전과 범종각, 요사채, 미륵전과 삼성각이 차분하게 놓여 있으며 대부분 근대 이후 중창된 전각들이다. 그 규모만 따지면 여느 지방 사찰과 다르지 않지만, 용암사의 진정한 중심은 가람 위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야 만난다.
돌계단 양쪽으로는 쌍미륵의 보개를 본뜬 작은 꼬마 불상들이 도열해 순례객을 맞이하고, 계단 끝에 다다르면 두 석불이 장지산을 병풍처럼 짊어진 채 장엄하게 서 있다. 절집의 소박함과 대비되는 이 압도적 장면은 용암사를 찾는 이들이 가장 깊이 기억하는 순간이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에서 멈춰 서는 마음, 쌍미륵이 남긴 의미
쌍미륵은 단순한 석불이 아니라 한 시대의 교역로, 왕실의 발원, 민간의 신앙, 마을의 역사, 그리고 오늘의 순례가 모여든 상징적 공간이다.
장지산 아래에서 두 거불을 올려다보면, 수백 년 동안 바람과 비를 맞아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석불의 무게와, 길을 잃지 않도록 길손을 안내하던 표지의 역할이 절로 떠오른다.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길 위의 두 미륵, 장지산 용암사에서 만나는 천 년의 발원....파주 용미리 쌍미륵
오늘날에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크고 작은 마음의 짐을 내려두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길을 다시 바라본다. 작은 절집 아래 거대한 부처가 서 있는 이곳은, 그래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길 위의 사찰’, 그리고 ‘마음을 다시 두드려 보는 자리’로 남는다.
→지금까지 파주 용미리 쌍미륵 순례를 함께 하신 모든 분들!!! 성불하세요~~
박정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