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상업적 합리성' 관철한 관세협상 '선방'…안보·평화도 공감대
장기화 전망 뒤엎고 전격 합의…'전액 선불' 대신 분납 등 韓 입장 반영
김용범 "당일 급진전, 양보해서 된 것 아냐"…트럼프, 김정관에 "강인한 사람"
안보 분야도 "원자력 등 협력모색 의견 일치"…핵추진 잠수함도 후속 협의키로
李대통령 "페이스메이커 역할 충실히"…트럼프 "한반도 전쟁상태, 바로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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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대 사열하는 한미 정상 (경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전격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상업적 합리성'을 양해각서(MOU)에 명시하기로 하고 현금 투자의 연간 한도를 설정하는 등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 결과'가 필요하다는 그간의 말을 어느 정도는 지켜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안보 패키지와 관련해서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해 핵추진 잠수함의 도입 필요성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을 끌어냈다.
또 한반도 평화 추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 북미 대화 의지를 확인하며 '페이스메이커론'의 유효성도 재확인했다.
아직 한중 정상회담 등 여러 시험대가 남아 있지만, 이른바 '정상외교 슈퍼위크'의 최대 관문으로 여겨지던 한미 대좌에서 예상을 넘는 '선방'에 성공하며 좋은 스타트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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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맞이하는 이재명 대통령 (경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 '현금투자 2천억불, 年한도 200억불' 합의…향후 국회 설득 과제
이날 한미 정부는 3천500억 달러의 대미 금융투자를 현금 2천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천500억 달러로 구성하되, 현금투자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관세협상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
유사한 구조의 협상을 한 일본(현금투자 5천500억 달러)과 비교하면 총 현금 투자액이 약 36%에 불과하고, 연간 투자 상한까지 설정하는 등 한국 경제 규모에 맞춰 적지 않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MOU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전액 선불' 등을 언급하며 한국을 압박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그간 한국의 분납액을 연간 250억 달러로 예상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던 것을 고려하면 협상 과정에서 그 규모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협상의 핵심으로 언급해 온 '상업적 합리성'이 MOU 문구에 들어갔다는 점도 성과라 여길 만하다.
기본적으로 관세협상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협박'에 떠밀려 이뤄진 만큼 이를 성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쟁자들과 동등한 출발선을 보장받는 '선방'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격언은 이번 협상 결과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김 실장은 "수십 번 승강이를 벌인 끝에 MOU 문안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고 밝혔지만, 앞서 큰 틀에서 관세협상이 타결된 이후로도 3개월이 소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서명이 이뤄질 때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MOU에 서명해도 실제 자동차 등 관세 인하가 이뤄지려면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법안만 제출되면 그달의 1일로 소급해서 관세가 인하된다는 것이 김 실장의 설명이지만, 국회 논의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향후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도 이 대통령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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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다시 모인 한미 정상 (경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 김용범 "당일 급진전…시기 때문에 국익 소홀 않겠단 원칙으로 임해"
그간 대통령실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최종 타결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압도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투자 방식, 투자금, 일정, 손실 분담 및 투자 이익 배분 방식 등이 여전히 쟁점"이라고 언급한 것 등이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김 실장은 "어제 저녁에도 전망이 밝지 않았고, 당일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식 결단에 의해 최종 결론이 내려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협상 장기화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로 끝까지 원칙을 관철한 끝에 아시아 순방에서 결과물이 필요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실장은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양보해서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누차 말한 대로 '시기 때문에 국익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다'는 원칙대로 임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APEC CEO 서밋 연설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거론하며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며 "우리는 역량이 좀 더 떨어지는 사람을 (협상 상대로) 만나기를 바라는데 한국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타공인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협상의 파트너를 향해 최대한의 찬사를 보낸 것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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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정상 특별만찬 환영사 (경주=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10.29 superdoo82@yna.co.kr
◇ 핵잠수함 의제로 '실리 챙기기'…中 반응 등 변수 가능성 주시
한미 협상의 다른 축인 '안보 패키지'와 관련해서도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져 있음이 재확인됐다.
김 실장은 관세와 안보 협상 내용을 합쳐 '팩트시트'(사실관계 설명자료)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그간 알려진 대로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원자력협정 개정 추진 등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일종의 '굳히기' 시도가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에 대해 "이미 지지해주신 것으로 이해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문에서도 실질적 협의가 진척되도록 지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동맹 현대화를 위한 여러 전략적 현안에 대해 미국 측의 적극적 협조 의사를 확인했다"며 "원자력 등 핵심 전략산업 분야에서 더 큰 협력의 기회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에 더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공감하며 후속 협의를 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변화를 수용하면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실리'를 챙기는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중국 쪽 잠수함'의 추적을 언급했는데, 일각에서는 향후 중국과의 정상회담 등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이 표현은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며 "단순히 중국 방향의 우리 해역 인근에서 출몰하는 잠수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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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만난 한미정상 (경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 북미대화 불발됐지만…'페이스메이커론' 호응 속 의견일치 재확인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관심을 끈 또 하나의 이슈는 북미 정상 간 회동의 성사 여부였다.
이날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회동 불발'을 공식화하면서 북미 정상 간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다만 양 정상 모두 북미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요청하고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씀하신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에 상당한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큰 역량으로 전 세계와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주시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며 북미 대화의 조력자이자 촉진자가 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난 한반도에서 여러분(남과 북)이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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