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희순이 독보적인 서정과 뛰어난 감수성으로 직조해낸 32편의 영혼의 울림


[불교일보=성불 기자] 섬세한 서정과 뛰어난 감수성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온 시인 황희순이 첫 번째 산문집 『그림자 읽기』(詩와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래 『새가 날아간 자리』, 『미끼』, 『수혈놀이』 등 유려하고 단단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정제된 산문의 필치로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복기했다.

이번 산문집은 총 4부, 32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제목 ‘그림자 읽기’는 화려한 빛 뒤에 숨겨진 삶의 상처와 고독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인의 용기 있는 고백을 의미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둔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녔다. 나를 지우면 그림자도 지워질 터, 이 책은 피하지 않고 나를 읽고 지우며 흘려보낸 시간의 기록”이라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

책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부터 삶의 본질적인 고뇌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1부 ‘자발적 유배 비록’에서는 지겨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결단력과 ‘실패할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이별의 상처와 위로의 본질을 탐구하며, 논리적 잣대나 충고보다 그저 곁을 지켜주는 진정한 공감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특히 4부 ‘괜찮아, 지금이 더 좋은 때’는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건넨다. 저자는 젊음을 다 보낸 뒤에야 비로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음을 고백하며, 늙어가는 모습을 서로 ‘못 본 척’해주며 살아야 한다는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선을 보여준다. “불행감 없이 어떻게 매일매일의 해거름참을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라는 본문의 구절은 삶의 고통 또한 존재의 비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동안 시를 통해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서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황희순 시인의 사유는 이번 산문집에 이르러 한층 더 웅숭깊어졌다. 출판사 측은 “시인이 생산한 날카로운 시어에 스스로 찔리며 보낸 젊은 날의 에너지를 지나, 이제는 그 모든 흔적을 밤하늘로 돌려보내고 가볍게 흘러가고자 하는 시인의 성숙한 자세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자신의 내면을 콕콕 찔러대던 불행들을 놓아주고, 없는 듯 가볍게 흘러가고 싶다는 황희순의 문장들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요한 휴식처이자 맑은 지혜의 등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서 정보]

저자: 황희순

제목: 그림자 읽기

발행: 2025년 10월 31일

출판: 詩와에세이

작가 약력: 1999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강가에 서고픈 날』, 『미끼』, 『수혈놀이』 등 출간. 뛰어난 감수성과 깊은 서정으로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