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한국 불교의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

불교일보 승인 2025.01.22 08:55 의견 0

[여행honey] 한국 불교의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
고려 시대 16국사 배출한 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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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주석했던 불일암으로 가는 무소유길[사진/백승렬 기자]

(기사발신지=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나와 내 주위의 모든 존재들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를/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즐겁기를/몸과 마음의 괴로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한국 불교의 삼보사찰 중 하나인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템플스테이(사찰 체험)에서 만날 수 있는 '자애관 기도문'이다.

◇ 불면과 우울을 치유하는 자애관 기도

송광사 포교국장인 연성 스님은 차담회에서 사찰 체험 참가자들에게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 만든다"며 그들을 위해 자애관 기도를 독송하면 어느새 우울과 불면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행복은 하고 싶은 일 하고, 갖고 싶은 것 갖고, 먹고 싶은 것 먹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의미로 들렸다.

송광사는 유튜브 포교가 활발하다.

송광사TV를 켜면 자애관과, 관련 법문을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자애관 기도는 2025년 을사년 새해를 시작하기에 좋은 출발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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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템플스테이 차담회[사진/백승렬 기자]

◇ 고려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불교에서는 귀하고 값진 보배인 부처, 불경, 승려를 삼보(三寶)라 일컫는다.

한국에는 삼보를 상징하는 사찰이 있다.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통도사를 불보사찰, 팔만대장경을 품은 해인사를 법보사찰, 고려시대 국사 열여섯 분을 배출해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고 지칭한다.

국사는 지혜와 덕이 출중해 나라와 임금의 스승이 되는 승려이다.

송광사가 배출한 첫 번째 국사는 한국 불교의 중흥조로 여겨지는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다.

'한국 불교의 새벽을 연 승려가 원효대사라면, 그 새벽을 밝은 대낮으로 떠올린 고승이 지눌이다'라고 흔히 말한다.

지눌은 한국 불교의 주류 수행법인 간화선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정해결사'라는 모임을 결성해 불교정화 운동을 펼쳤다. 선교 융합이라는 한국 불교의 전통을 탁월한 저작을 통해 확립한 승려도 지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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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지눌의 사리를 봉안한 감로탑[사진/백승렬 기자]

지눌은 '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 '수심결' '원돈성불론' '화엄론절요' 등의 글과 저서를 남겨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추앙받고 있다.

지눌 이후 송광사에서는 진각, 청진, 진명, 원오, 원감, 자정, 자각, 담당, 혜감, 자원, 혜각, 각진, 정혜, 홍진, 고봉 등 15명의 국사가 더 나왔다.

모두 한국 불교의 초석을 마련한 큰 스님들이다.

고승대덕을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답게 송광사는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한 사찰로 꼽힌다.

국사전, 목조삼존불감, 고려 고종제서 등 5점이 국보이며 금동요령, 하사당, 소조사천왕상, 약사전, 영산전 등 28점이 보물이다.

16국사를 기리기 위해 고려 공민왕 때(1369년)에 처음 세운 국사전은 승보사찰의 상징이다.

국보나 보물이 아니더라도 송광사가 보유한 불교 문화재는 8천여 점에 이른다.

한국전쟁 등으로 큰불을 겪은 송광사가 이토록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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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리구시[사진/백승렬 기자]

약 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는 비사리구시, 지눌스님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고향수, 능히 볼 수는 있으나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릇인 능견난사는 송광사의 명물로 통한다.

고향수는 지눌 스님이 입적할 때 이 나무도 따라서 말라죽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능견난사는 법당에서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하던 접시이다.

◇ 법정 스님의 무소유 길

고려 시대 16국사가 송광사의 찬란한 역사를 만들었다면 현대 송광사를 빛낸 큰 스님은 법정(1932∼2010)이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 시대의 스승으로서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법정 스님은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며 청빈의 도를 널리 알렸다.

1970년대 서울 봉은사에 거주하며 한글 대장경 역경에 헌신했고, 함석헌 선생과 함께 '씨알의 소리' 발행에 참여했으며 불교신문사 주필을 지냈다.

1975년 모든 직함을 버리고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칩거하며 글로써 대중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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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입구 대나무 숲길[사진/백승렬 기자]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법정 스님은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 은둔했다.

스님의 글은 울림이 컸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등의 수필과 저술은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스님은 '깨달음의 거울' '진리의 말씀' '불타 석가모니' '정토삼부경' '숫타니파타' 등의 번역서와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의 법문집을 남겼다.

법정 스님 입적 후 다비식이 송광사에서 치러진 뒤 불일암을 찾는 참배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참배객이 늘어나자 송광사는 사찰 입구에서 불일암에 이르는 약 1㎞의 길을 정비해 '무소유길'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님의 주옥같은 문장이 새겨진 푯말이 길 군데군데 세워져 발길을 멈추게 한다.

조촐하고 한갓진 불일암에는 스님이 생전에 사랑했던 후박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법정 스님 사리는 이 후박나무 아래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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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과 송광사[사진/백승렬 기자]

◇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조계산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명칭은 중국 조계산에서 유래했다.

중국 광동성 곡강현 조계산은 선종의 제6조인 혜능 대사가 머물던 곳이다.

지눌 스님 이래 송광사가 불교의 중심이 되자 고려 희종은 송광사를 품고 있는 산에 '조계산'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후 순천 조계산(888m)은 한국 불교의 원류를 표상하는 장소가 됐다.

그전까지 산 이름은 송광산이었다. 이 산은 예부터 소나무가 많아 솔뫼라고 불렸는데 송광산은 솔뫼의 한자 표기이다.

조계산은 송광사 외에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큰 절집을 하나 더 품고 있다.

불교 태고종 본산인 선암사이다. 조계산 서쪽에 송광사, 동쪽에 선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잊는 산길에는 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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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사진/백승렬 기자]

남해안에 자리 잡아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인 조계산은 활엽수림이 울창하고 예부터 작은 강남이라 불릴 정도로 풍광이 정갈하고 아름답다.

굴목이재를 넘어 두 고찰을 연결하는, 약 6㎞의 산길은 '천년불심길'이라 불린다.

탐방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길은 잘 정비돼 있다.

길 중간에 보리밥 집이 두어 군데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방앗간이라고 할까. 등산객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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