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92% "사회갈등 중 진보·보수 간 정치적 갈등 가장 심각"
보건사회연구원 조사분석…33% "정치성향 다르면 술자리도 안 해"
"정부 신뢰 높이고 소통채널 활성화해 사회갈등 낮춰야"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사회갈등 중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회갈등은 희소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집단 간 대립과 긴장, 그리고 이해관계와 신념, 가치관이 충돌하는 균열 상태를 말한다.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페이퍼에 따르면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 원자료를 활용해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를 살펴본 결과 국민 10명 중 9명꼴로 여러 갈등 사안 중 정치영역에서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여겼다.
보사연은 2014년 이후 매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2023년에는 6∼8월 기간에 19∼75세 남녀 3천950명을 상대로 면접 조사했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갖가지 사회갈등 유형 가운데 진보와 보수 간 정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여겼지만, 여성과 남성 간의 젠더 갈등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구체적으로 응답자의 92.3%가 진보와 보수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해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 유형으로 바라봤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82.2%), 노사갈등(79.1%), 빈부갈등(78.0%),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갈등(71.8%), 지역갈등(71.5%)이 심각하다는 답변도 많았다.
이에 반해 주택소유자와 비(非)소유자 간 갈등(60.9%), 세대 갈등(56.0%), 다문화 갈등(54.1%), 남녀 간 성 갈등(46.6%) 등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다만 주택소유자와 비소유자간 갈등은 2018년 조사 때는 49.6%로 유형별 사회갈등 중에서 가장 낮았지만, 2023년 조사에서는 60.9%로 11.3%포인트나 치솟아 눈길을 끌었다.
그 사이에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 및 불균형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한 결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성인남녀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 유형이라고 꼽은 정치영역의 갈등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 의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르면 함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71.41%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심지어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는 사람도 58.2%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을 훌쩍 넘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나 지인과 술자리에 같이할 의향이 없는 사람은 33.02%로 집계됐다.
집단별로는 여성, 노년층, 중졸 이하, 소득 최하위 집단, 주관적 소득계층이 낮은 집단에서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술자리, 연애 및 결혼,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같이할 의향이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향후 한국 사회의 사회갈등 전망에 대해서는 65.09%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했고,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28.25%였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6.66%에 불과했다.
10년 후 우리 사회에서 심각해질 사회갈등 유형과 관련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87.66%로 1위에 올랐고, 빈부갈등(79.95%), 노사갈등(75.84%),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73.43%) 순이었다.
사회갈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래 삶의 불확실성 심화'(25.65%)와 '사회계층 간 이동성 단절'(23.22%)을 많이 꼽았다. 또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부족'(17.09%), '미디어(SNS)의 발달로 인한 가짜뉴스 전파'(10.79%), '혐오와 차별의 정서 확산'(10.14%), '상호 간의 신뢰 부족'(8.54%), '이기적 집단주의의 팽배'(4.58%) 등을 사회갈등을 초래하는 이유로 들었다.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정당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응답자들은 사회갈등의 해결 주체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56.01%), 국회 및 정당(22.04%), 국민 개개인(9.16%), 언론계(4.45%), 시민사회단체(3.34%), 기업(3.05%), 교육계(1.00%), 종교계(0.96%) 등의 순으로 꼽았다.
특히 사회갈등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고 투명한 법 집행(22.31%)과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21.81%), 촘촘한 사회안전망 강화(15.44%), 계층이동의 사다리 마련(15.04%), 혐오 차별 인식개선 교육 및 캠페인 강화(13.60%),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활용 교육 실시(8.75%), 갈등 중재 시스템 마련(3.06%)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사회갈등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는 주요 주체에 대한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기관·단체 신뢰도는 해결 주체 1위로 꼽힌 행정부(대통령실, 중앙정부, 지방 자치정부 등)는 41.9%로 절반에 못 미쳤고, 2위인 입법부(국회)도 22.6%로 아주 낮았다.
연구진은 "사회갈등을 완화하려면 갈등 당사자와 이해관계자, 시민이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부통제와 청렴 문화 확산을 통해 정부 신뢰 수준을 높이고 정치 성향이 다른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 긴장과 반목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소통 채널을 조성하고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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