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박정희 동상 인근에 설치된 감시초소. (사진=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22일 오전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동상 인근에 감시용 초소가 설치돼 있다. 해당 초소는 박정희 동상 훼손 방지를 위해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이 설치했다. 2025.1.22(캡션)


■바로 보는 현대사, 보안사 1회

"각하를 똑바로 모시십시오."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김 부장, 왜 이래! 왜 이래!"

"탕."

"무슨 짓들이야!"

"탕."

궁정동 대행사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차지철 청와대경호실장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방아쇠를 당긴 총격을 받고 화장실을 향해 후닥닥 몸을 숨겼다. 총구를 박정희 대통령을 향하고 있던 김부장은 차실장을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이 되지 않았다. 궁정동 대행사에 참석했던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박대통령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총구로 권력을 탈취한 그가 18년 독재의 종말을 고하며 총구로 절명하는 순간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한국 현대사를 뒤바꿔 놓은 운명의 총성이 울린 그날, 박정희 정권의 내로라 하는 권력자 가운데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만큼 민첩하게 행동한 이는 없었다. 전 보안사령관의 발 빠르고 용의주도한 이날의 행동은 박대통령이 시해된 직후 권력자들을 물리치고 사태를 주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0년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전두환 후보를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식을 갖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1979년 12월 12일 이후 264일 만의 일이었다. 12·12, 5·17, 5.18을 거쳐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라고 회자되고, 기록되는 전두환의 집권 과정은 마침내 제5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전두환 장군의 청와대 입성과 함께 그가 이끌어 온 신군부, 좀 구체적으로는 하나회·보안사 인맥들이 대거 권력의 핵심으로 진출한다. 하나회의 한국경영시대가 열린 것이다.

드르륵~드르륵~

궁정동 총소리가 들렸던 그날, 만추의 저녁,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 대령은 경복궁 내 단장실에서 연발 총성을 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총성의 진원지를 확인했다. 총성은 10시 방향, 즉 서북쪽에서 울렸다. 소총 소리인데 한두 발이 아니고 수십 발 아니, 백 발은 될 것 같았다.

장세동 대령뿐만 아니라 휘하의 30경비단 전체가 총성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세 군데 이상에서 총성 보고가 들어오면 진원지는 거의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장세동 대령은 전두환 시대 제2인자가 될 인물로 군인 전두환과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은 부대에서 상하관계로 지냈다. 그는 하나회 핵심 멤버로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마음 깊이 존경하는 충복이기도 했다.

일찍이 68년 1·21사태 때 30경비단의 전신 30경비대대(대대장 전두환 중령) 작전장교로서 북한 124군 특수부대 요원들의 기습에 대응한 경험이 있었던 장세동 대령이 이날 대처하는 모습은 전두환 보안사령관만큼이나 빨랐다. 그는 총성이 궁정동 식당 쪽이라는 판단이 섰고, 뒤이어 대통령의 현 위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차지철 경호실장실로 다이얼을 돌렸다.

"실장님 계십니까?"

장세동 대령의 질문에 전화를 받은 청와대경호실장 부관은, 비서실장님과 본관에서 식사하고 계신다고 대답했다.

장세동 대령은 일단 안심했다. 경호실장 있는 곳에 대통령이 있으므로. 장세동 대령은 궁정동 정보부 안가 식당에 대해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근처에서 총성이 울린 이상 청와대 외곽 경비책임자로서 그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휘하의 경비단에 출동대기명령을 내린 장세동 대령은 곧장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몇 분 걸리지 않아 지프차는 3백여 미터 거리에 위치한 궁정동에 도착했다.

지프에서 뛰어내린 장세동 대령은 궁정동 식당 쪽으로 갔다. 그때 어둠 속에서 사복경비원(정보부 소속) 한 명이 튀어 나와 M16 소총을 들이댔다.

"누구야, 못 들어갓.“
경비원의 전투복에는 레인저 휘장, 경호 · 공수휘장, 훈장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장세동 대령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무슨 총성입니까?" 하고 물었다.

"저어, 비상연습이⋯."

경비원이 어물어물하자 장세동 대령은 비상연습인데 무슨 총성이냐⋯, 재차 물었다.

"내가 들어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경비원은 안으로 들어가서 철제문을 잠가버린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의심이 부쩍 든 장세동 대령은 소지하고 있던 워키토키로 청와대 경호실 상황실장 정동호 준장에게 현장 상황을 보고한 뒤 그 자리를 떴다.

경복궁 30경비단장실로 돌아온 장세동 대령은 다시 청와대경호실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경호실장 부관은 여전히 "실장님은 본관에서 식사중이십니다."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한편 궁정동 대행사에 참석했던 김계원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국군 서울지구병원 응접실에 모셔놓은 뒤 청와대로 돌아왔다. 본관 2층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간 김계원 비서실장은 뒤따라 들어온 4, 5명의 경호원들에게 총리와 장관들을 청와대로 소환하라고 지시한 뒤 자신의 권총을 찾아보았다. 권총에는 실탄이 없었다.

그때 당직조의 한 경호원이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실장님, 저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동생인 전경환입니다. 경호계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

대충 인사를 받은 김계원 비서실장은 전경환 계장에게 "자네 권총에서 실탄 좀 꺼내줘."라고 말했다. 전경환 계장으로부터 실탄 여섯 발을 건네받은 김계원 비서실장은 자신의 권총에 장전했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실탄을 장전하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던 전경환 계장은 가만히 비서실장실에서 나왔다. 당직실로 돌아온 그는 어디론가 급히 다이얼을 돌렸다. (학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