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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부경』의 삼극과 『정역』의 삼극

구고 편집위원

김일부는 하도의 도생역성倒生逆成과 낙서의 역생도성逆生倒成의 논리로 체용 전환과, 선천과 후천의 교체 및 시간 흐름의 방향성을 설명하였다. 전자는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흐른다는 것이고, 후자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는 뜻이다. 이를 도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하도는 다섯 번 째가 6이고, 낙서의 다섯 번 째는 5이다. 그렇다고 5와 6이 다른 것은 아니다. 선후천이 우주의 두 얼굴이기 때문에 하도는 6이고, 낙서는 5일 뿐이다. 하도의 황극와 낙서의 황극은 동일하지만, 숫자만 다르다는 뜻이다.

이처럼 무극과 황극, 태극이 상호 교차의 형식으로 움직인다는 이론은 천도가 만물의 기원이며 도덕의 근원이라고 판단한 전통 사유와 결별을 선언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아닐 수 없다. 3극은 단순히 천도를 묻는 인식론의 틀이 아니라, 그것은 진리의 내용과 형식으로서 천도는 3수 구조로 구성된 역동적 존재론이라는 뜻이다.

3극을 『주역』에서 말하는 천지인 3재 이외에도 무극과 태극과 황극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전거는 『환단고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의 원형문화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혹은 원방각圓方角에서 비롯되었다. 원방각에 입각하여 동양의 천문학과 수학 및 『주역』이 출현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圓(○)은 하나이니 하늘의 무극 정신을 뜻하고, 방方(□)은 둘이니 하늘과 대비되는 땅의 정신을 말하고, 각角(△)은 셋이니 천지의 주인공인 인간의 태극 정신이로다.”

원은 하늘의 역동성과 변화성의 정신을 대변한다. 원은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둥근 형태를 이루는 하늘의 순환성을 상징한다. 원은 언제 어디서나 차별 없는 공정성과 완정성을 대표한다. 방은 하늘과 비교해서 안정성을 대변한다. 각은 삼각형의 꼭지점이 위에 하나가 있는 것은 하늘을, 아래에 두 개가 있는 것은 땅을 상징한다. 마치 사람의 머리가 하나이고 발이 두 개인 것처럼 인간은 천지와 합일된 존재를 의미한다. 삼각형에는 완전성과 조화성이 들어 있다.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역시 만물이 일자에서 다자로 진화하는 공식을 수식화한 『천부경』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의 1․2․3이라는 수의 원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1은 만물의 시작점으로서 하나[一]는 무無에서 시작한 하나라고 강조한다. 무는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질서의 근원인 카오스, 즉 무극을 가리킨다. 하나의 조화에서 지극한 셋으로 나뉜다. 즉 ‘일극즉삼극一極卽三極’의 논리인 것이다. 이를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집일함삼執一含三․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로 전하고 있다. ‘하나 속에 셋이 있고, 그 셋이 일체가 되어 둥글어간다’는 우주의 삼위일체 섭리를 의미한다.

『천부경』의 ‘1․3’ 논리는 무無에 귀속된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공간의 무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는 오히려 유와 만물을 탄생시키는 최종 근거를 뜻한다. “무는 유형에 대한 무형의 ‘없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은 없음[無], 즉 무라는 바탕 위에 존재한다. 무 없는 우주는 무대 없는 극장과 같기 때문이다. 무는 그 불변성으로 인해 우주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가 된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한다. 무無가 유有로 변한 것이다. 무는 유의 근거이며, 유는 무의 파생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 완벽한 대칭이 깨지는 경계, 즉 하도가 낙서의 질서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유형의 만물이 무로부터 빚어진다는 것이다. 무는 우주를 만드는 일종의 암흑물질(dark matter)과 암흑에너지(dark energy) 자체 또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괘는 진리를 표상하는 『주역』의 고유한 형식이다. 괘는 천지와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유효한 코드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역』에 물든 나머지 3극을 눈에 보이는 3재로만 풀이하였다.

“변화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형상이요, 강유는 낮과 밤의 형상이요, 6효의 움직임은 3극의 도이다.”

‘삼극三極’에 대한 풀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역』에서 유래한 전통의 해석이 있고, 다른 하나는 『주역』을 낱낱이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한 『정역』의 풀이가 바로 그것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라는 3재三才가 전자의 입장이다. 무극無極, 태극太極, 황극皇極이라는 3극이 우주의 핵심축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정역』도 『주역』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의 분기점은 ‘삼극’이라는 술어를 선후천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우주를 3원적 구조로 본다는 입장에서는 『주역』과 『정역』이 같다. 새로운 사상에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듯이, 정역사상은 비록 과거의 용어를 답습했으나, 내용은 과거와의 냉정한 결별로 나타났다. 즉 노자老子의 ‘무극’과 『주역』의 ‘태극’을 융합하고, 다시 『서경書經』의 ‘황극’을 새롭게 해석하여 하나의 통합 이론으로 독창적인 우주론을 정립하는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