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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부경』의 삼극과 『정역』의 삼극 (2)
구고 편집위원
『정역』의 3극론에서 무극은 진리의 바다요, 황극은 진리가 현실에 펼쳐지는 생명 진화의 경계요, 태극은 무극과 황극이 살아 있도록 만드는 영원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다만 『정역』은 숫자 중심으로 설명한 까닭에 후학들은 괘의 구성 근거에 대한 관심보다는 산술적인 대칭 관계에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손을) 들어보면 문득 무극이시니 열이로다. 열하고 (손을) 굽히면 문득 태극이시니 하나로다. 하나가 열이 없으면 본체가 없는 것이고, 열은 하나가 없으면 작용이 없는 것이니, 합하면 토라. 중앙에 거함이 다섯이니, 황극이시다.”
이 글은 3극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의 정립을 겨냥하고 있다. 왼손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굽히고 펼치는 동작 중심으로 3극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모두 펼치면 10무극[擧便无極, 十]이요, 엄지손가락을 굽히면 1태극[十便是太極, 一]이요, 새끼손가락을 굽히거나 펼치면 5황극[合, 土. 居中, 五, 皇極]을 뜻한다.
이처럼 김일부는 무극과 태극과 황극의 3극 사이의 역학力學 관계를 수지도수와 일치시키는 논리를 세웠다. 수지도수란 다섯 손가락으로 3극 사이의 유기적 운동은 물론 시간의 질적인 변화 과정 및 정역팔괘도를 뒷받침하는 아주 간단한 셈법이다. 과거에는 태극과 음양오행으로 만물의 변화상을 읽어냈는데, 김일부는 음양 2수와는 다른 3수 중심의 우주관을 수립했던 것이다.
다만 음양오행은 생성 차원을, 3극은 존재 차원을 다루고 있다. 전자는 자연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금화교역金火交易을, 후자는 하늘과 땅의 속 질서를 뜻하는 율려律呂를 뜻한다. 그러니까 하도의 도상에서 음양오행은 겉(외부)에, 3극은 음양오행의 속(내부)에 위치하는 것이다.
과거의 역학자들은 하도의 중앙에 위치한 도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것이 3극인지도 몰랐고, 내부 3극과 외부 음양오행의 관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김일부는 5개의 점으로 연결된 두 쌍을 10무극, 또한 10무극에 의해 둘러싸인 것은 5황극, 5황극의 중심에 있는 것을 태극으로 규정했다. 하도는 3극이 외부의 음양오행을 주재하는 형태를, 낙서는 5황극을 중심으로 음양오행이 만물을 지배하는 양태를 띠고 있다.
하도의 중앙은 무극이 황극과 태극을 품고 있는 반면에, 낙서에는 무극이 없다. 무극이 있는가 또는 없는가에 따라 하도와 낙서가 나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도와 낙서의 두드러진 차이점으로서 선천과 후천이 구분되는 준거인 것이다. 하도는 생명의 창조성을 상징하는 3극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외부 4방은 동서남북의 공간과 춘하추동의 시간이 순환하면서 운동하는 음양오행을 가리킨다.
하도는 중앙의 3극을 중심으로 외부의 음양오행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 3극은 3수로 구성된 본체의 역동성을, 음양오행은 대대待對 구조로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편 낙서는 중앙에 홀로 황극만 있고, 외부 4방은 대대 관계가 깨져 만물이 모순 대립으로 성장하는 것을 상징한다.
『환단고기』는 이러한 3극에 근거해 천지인을 상징하는 괘가 형성되었음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인용한 ‘원방각’이다. 원은 1로서 하늘이요, 방은 2로서 땅이요, 각은 3으로서 인간이다. ‘1-2-3’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생겨나는 논리적 생성 질서를 뜻한다. 원방각을 3극으로 표현하면 원은 무극無極(1)이요, 방은 반극反極(2)이요, 각은 태극太極(3)인 것이다. 괘(☰)로는 가장 위가 무극, 가장 아래가 반극, 가운데가 태극이다. 한마디로 「소도경전본훈」에 나오는 무극, 반극, 태극의 3극에 근거해서 천지인 3재의 괘가 만들어졌으며, 그 뿌리는 원방각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역』은 황극이라 표현했고, 「소도경전본훈」은 반극反極이라 표현했을뿐, 그 의미는 거의 똑같다. ‘이길 극克’은 부정과 모순을 대변하는 반면에, ‘다할 극極’은 긍정과 포용과 상생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반反은 원래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간다(되돌린다)는 영원회귀의 귀향을 뜻한다. 그곳은 이미 낡고 케케묵어 비어 있는 집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돌아가[反極] 숨쉴 수 있는 고향을 뜻한다. 무극은 이미 오래된 미래의 뿌리로서 인류가 꿈꾸던 유토피아의 바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