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 연극' 이영애 "공들인 연기에 목마름, 새로운 깨달음 희열"
입센 연극 '헤다 가블러'로 무대 도전…"결혼·출산 후 여러 감정 알게 돼"

배우 이혜영과 동명 작품 각각 출연…"두 배우 색깔 비교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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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영애 '헤다 가블러'로 32년 만에 연극 무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이영애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연극 출연 제의를 받고 '공부하는 자세로 해보자'고 시작했습니다. '헤다 가블러'는 배우로서 보여줄 것도 많지만 힘든 것도 많아요. 힘들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이영애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란 생각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배우 이영애가 연극 '헤다 가블러'로 무대에 선다. 20대인 1993년 출연했던 '짜장면' 이후 32년 만의 연극 도전이다.

이영애는 8일 오후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어렸을 때 했던 작품이지만 '짜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크게 기억에 남았고 20대, 30대, 그 이후를 보내면서도 항상 연극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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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하는 이영애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이영애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1890년 작인 '헤다 가블러'는 억압된 시대에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다룬 작품이다. 이영애가 맡은 주인공 헤다는 남성들의 흠모를 받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한편으론 냉소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성격의 복합적인 캐릭터다.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동안 매기 스미스, 아네트 베닝, 이자벨 위페르, 케이트 블란쳇 등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헤다를 연기했다.

이영애는 자신이 연기하는 '헤다'에 대해 "정답이 없는 여성 같다"며 "헤다는 하나의 색깔을 가진 인물이 아니어서 우리가 기존에 알던 헤다의 색깔을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면서 (헤다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중"이라며 "밝은 모습이 있어야 이면의 더 어두운 모습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새로운 헤다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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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취하는 이영애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이영애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이영애는 또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여성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을 때 만난 작품"이라면서 "20대나 30대 때 만났더라면 이렇게 공감하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입센 희곡 전집을 완역한 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며 '헤다 가블러'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학교 지도교수였던 김미혜 교수님과 이야기하다가 입센의 작품을 하게 된다면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다고 했죠. 헤다의 매력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할 테고 저도 그랬죠. 마침 드라마('운수 좋은 날') 촬영도 끝나고 배우로서 도전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 출연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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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현정 LG아트센터장(왼쪽부터), 전인철 연출, 배우 김정호, 이영애, 백지원, 지현준, 이승주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베테랑 배우지만 그에게도 수십 년만의 연극 연기는 쉽지 않았다.

"대사가 많아서 어려움이 커요. 엔지(NG)가 있으면 안 돼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1막부터 4막까지 퇴장 없이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죠. 하지만 캐릭터를 연구하면 할수록, 대본을 세 번 읽을 때, 열 번 읽을 때 다르더라고요. '내가 몰랐던 걸 이렇게 알게 됐구나' 하는 희열감도 있고요. 제가 모르는 제 색깔이 나올 때 재미있더라고요. 매 순간 힘들지만, 그 몇 배의 즐거움을 얻고 있습니다."

이영애는 "드라마가 끝나면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며 "좀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작업을 하면서 그런 과정들이 연기 이상으로 저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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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취하는 이영애-백지원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이영애와 백지원이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이번 공연은 공교롭게도 국립극단이 제작하는 '헤다 가블러'와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오르게 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는 5월 7일,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하루 뒤인 5월 8일 개막한다. 특히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연기생활 45년 차인 대배우 이혜영이 헤다 역을 맡은 터라 이영애와의 연기 대결도 관전 요소 중 하나다.

이영애는 "이혜영 배우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팬으로서 좋아하는 배우"라며 "이렇게 같은 시기에 공연하게 될 줄 몰라 조금 놀라긴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이혜영의 색깔과 이영애의 색깔을 비교해 봐도 좋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면 좋은 게 아닌가 싶다"며 "저도 이혜영 배우의 작품을 많이 기대하고 있고 두 작품 모두 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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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하는 전인철 연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전인철 연출이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연출을 맡은 전인철 연출가는 "국립극단과 같은 시기 같은 작품을 공연한다고 했을 때 당황스럽고 부담감이 생겼다"면서도 "지나고 보니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잘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연출은 이어 "1천500석 규모의 LG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가로 16m, 높이 10m의 거대한 무대 세트를 마련했고 대규모 스크린을 활용한 라이브 영상을 활용해 연극과 영상이 스펙터클하게 표현되는 장면들을 구성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 있어서 (국립극단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 공연과는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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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김정호(왼쪽부터), 지현준, 이영애, 백지원, 이승주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4.8 ryousanta@yna.co.kr

LG아트센터는 지난해 스타 배우 전도연과 박해수가 주연한 연극 '벚꽃동산'에 이어 또다시 스타 배우를 내세운 연극을 제작한다.

'벚꽃동산'은 4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고 올해 하반기 홍콩과 싱가포르 등 해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이제 우리가 만든 작품을 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시점이 됐다"며 "대극장 연극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인지도가 높고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무대에 선다면 연극의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연극도 그런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연극에는 이영애를 비롯한 모든 출연진이 원캐스트로 한 달여간 무대에 선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의 잠녀(해녀) 이모를 연기한 백지원이 캐스팅된 것을 비롯해 김정호, 지원준, 이승주 등이 출연한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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