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성역의 길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깊은 산중, 사자산 자락에 안긴 법흥사 적멸보궁은 고요한 숲길 끝에 다다르면 모습을 드러낸다. 사찰의 문턱을 넘는 순간, ‘적멸(寂滅)’이라는 말 그대로 번뇌가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법흥사는 본래 ‘흥녕선원’이라 불리던 사찰이다. 신라 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힌다. 통도사, 정암사, 봉정암, 상원사와 함께 불교 성보의 중심지로 자리하며, 특히 이곳은 사자산문의 개산 사찰로 알려져 있다.

적멸보궁_ 온 인류 참회기도도량,..."나를 찾아서"


역사 속 법흥사의 중심에는 징효대사가 있다. 그는 9세기 후반, 스승 철감도윤을 모시고 수행하던 중 흥녕선원에 주석하여 사자산문을 열었다. 그러나 시대의 혼란 속에 사찰이 화재로 소실되자 남쪽으로 내려가 스승이 입적한 쌍봉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의 사리가 돌아와 봉안되기까지 44년의 세월이 걸렸고, 이때 팔각원당형 부도와 탑비가 세워졌다. 탑비에는 당시의 정치 상황과 징효대사의 생애가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 귀중한 사료가 된다.

조선 후기에 들어 사찰명은 ‘법흥사’로 바뀌었고,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법흥사에는 범어로 쓰인 패엽경이 전해지는데, 전설에 따르면 금강산 마하연사에 있던 것이 남북 분단 이후 남쪽으로 옮겨져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이는 고려 말 원나라와의 교류 속에 전래된 유물로 추정된다.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성역의 길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은 단순한 역사유적을 넘어, 한국 불교의 사상사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이 뿌리내린 이곳은, 왕실과 지방 호족의 후원을 받으며 시대를 넘어 신앙의 불씨를 지켜왔다.

오늘날 순례객은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 적멸보궁 앞에 서면, 탑과 불전이 아닌 그 빈 공간을 향해 절을 올린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성역이기에, 그곳은 부처님 형상 대신 ‘부처님의 존재 그 자체’를 느끼는 자리다. 사자산의 바람과 숲소리 속에서, 천년 세월을 이어온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여전히 고요히 불법(佛法)을 품고 있다.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성역의 길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성역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