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100일] ⑥ '산재와의 전쟁' 나선 李대통령…노동·기업 양립 가능할까
공식석상서 산재 기업·공공기관 강하게 질타…실효성 있는 대책 반복 촉구

재계와도 자주 접촉하며 '균형' 추구…야당 등에서는 '모순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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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 주재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산재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5.7.29 hihong@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조성흠 김은경 옥성구 기자 = 노동계의 지지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친노동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국무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산업재해 발생 기업·공공기관을 강하게 질타하면서 제재 방안을 직접 언급하고, 범부처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등 강경 행보를 보였다.

이 대통령의 이런 기조에 맞춰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 범부처적인 대응에 돌입했다.

재계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야당에서는 '모순적'이라고 비판하고, 재계에서도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 산재·임금체불 근절 등 강력 촉구…노동계 숙원사업도 거침없이 추진

소년공 출신인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공식 회의 자리 등에서 여러 차례 산재 예방과 임금 체불 등에 관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빛에 가려졌던 우리 사회 이면을 양지로 끄집어냈다.

실시간 중계되는 국무회의에서는 산재 근절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논의하며 경제적 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산재 공시를 통한 주가 폭락 등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들을 직접 언급하며 추진을 촉구했다.

날카로운 언사를 통한 경각심 제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포스코이앤씨 등 포스코그룹에서 발생한 5차례의 사망사고와 관련해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살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이다. 정말 참담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단순히 회의 석상에서 발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삼립 제빵공장을 직접 찾아 SPC 경영진을 상대로 장시간 근로 등 취약한 현장 안전 문제를 강하게 따져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에 발맞춰 정부는 2030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만인율)을 현재 1만명당 0.39명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명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하는 등 '산재 공화국' 오명을 벗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산재 감축에 "직을 걸겠다"고 선언하며 관계부처와 노동안전 종합대책 마련을 추진하는 등 전 부처적 대응에 나섰다.

특히 산업안전 분야 근로감독관을 올해 300명, 내년까지 1천300명가량을 대폭 충원하며 몸집을 키운 노동부는 이달 발표된 조직개편에서 산업안전본부가 차관급으로 격상돼 첫 2차관 체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른 부처들도 안전 관련 경영공시 제도 강화, 금융제재 확대 등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각종 제재안 등을 속도감 있게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질서 확립을 위해 정부의 단호한 조치를 촉구했다.

임금 체불과 관련해선 신고사업장에 대한 전수 조사를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감독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이들에 받는 부당한 대우 및 임금 체불 사례에 대한 실태조사를 지시했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 노동계의 숙원 사업들도 재계 반발을 무릅쓰며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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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與 주도로 본회의 통과…6개월 후 시행

◇ "기업, 노동 둘 다 중요하다"…'양손잡이 경제관'에도 여전한 우려

이처럼 노동계 이슈에 힘을 쏟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다른 쪽에서는 재계 달래기에 집중하며 노사 관계에 있어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모양새다.

이런 정부 기조의 밑바탕에는 '실용적 시장주의'라는 국정 철학이 자리한다. 이념에 치우치고 규제에 얽매이기보다는 기업의 자율성과 기업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새는 양 날개로 난다. 기업, 노동 둘 다 중요하다"면서 "소뿔을 잡으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재계 우려가 커지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매달 기업인들과 접촉하는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 6단체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말했다. 7∼8월에도 경제인들을 차례로 만났다.

양대노총 위원장과 이달 4일에서야 취임 후 첫 대면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노동계 숙원 해결에 몰입하면서도 재계와의 접촉을 우선시하며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만남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은 "나를 향해 노동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곳도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립적 입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친기업 '당근책'도 꺼내 들었다. 규제 개혁과 경제형벌 합리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야당은 정부의 이런 행보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국민의힘은 "명백한 자해 입법"이라며 "관세 협상을 위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요구해 놓고, 정작 기업 경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건 명백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재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각종 기업 규제 관련 법안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경우 재계는 원청 사용자 정의를 명확히 하는 등 경영 위축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법 개정은 최대 주주 측 의결권이 제한되고 집중투표제가 확대돼 기업 경영권 침해 및 소송 리스크가 커졌다고 반발한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은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만나 "상법뿐 아니라 노란봉투법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법이 개정되다 보니 기업들의 걱정이 많다"며 "배임죄, 경영 판단의 원칙 등 보완 입법이 우선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양손잡이 경제관'에 공감하면서도 기업에 대한 뒷받침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노사가 협력하고 상생의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100일이 지난 현재 노동 정책과 기업 정책에서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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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조업 기업현장 간담회, 참석자 발언 듣는 이재명 대통령 (안산=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3일 경기 안산시 새솔다이아몬드공업에서 열린 K-제조업 기업현장 간담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2025.9.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hi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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