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년만의 화해' 임진란 왜장 후손들, 의승병 추모탑 앞 사죄
옥천 가산사 '한일 평화의날' 행사 참석해 조선 침략 용서 구해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임진란을 일으킨 왜장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조상들의 잘못에 대해 머리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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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 앞에 고개 숙인 왜장 후손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10일 충북 옥천의 조계종 사찰인 가산사에서 열린 '광복80주년 기념 한일 평화의 날' 행사에 일본인 히사다케 소마(24)씨와 히로세 유이치(70)씨가 참석해 의병·승병을 추모하는 위령탑에 술잔을 올리면서 선조들의 침략에 대해 사죄했다.

또 이종학(이순신 장군 후손)·서재덕(서예원 장군 후손)·황의옥(황진 장군 후손)씨 등 조선 장수의 후손들과 만나 손을 맞잡고 용서와 화해를 구했다.

두 일본인은 충청 전투를 지휘한 왜군 5진 후쿠시마 마사노리 부대 소속의 쵸소 가베모토치카 왜장과 6진 모리 데루미츠 부대 소속 도리다 이치 왜장의 후손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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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에 묵념하는 왜장 후손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들의 방문은 부산외대 김문길(일본학과) 명예교수와 가산사 주지인 지원 스님의 오랜 노력으로 이뤄졌다.

왜군이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가 묻었다는 일본 교토의 '귀무덤' 위령제에 참석했던 두 사람은 가산사에 임진왜란 때 활동한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진영(초상화)이 모셔진 점에 착안, 평소 친분이 있던 왜장 후손들을 만나 사죄의 자리를 주선했다.

행사에 참석한 히사다케 소마씨는 "그때의 침략 행위가 잘못이라고 반성하던 중 사죄할 기회가 생겼다"며 "오늘을 계기로 많은 일본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평화의 시대로 함께 나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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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임진란 한일 장수 후손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지원 스님은 "임진왜란 발발 433년이 지났지만 이번 참회의 의미는 매우 크다"며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이 화해와 용서, 나아가 평화의 미래를 함께하자는 취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가산사는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대인 720년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 군영으로 사용되며 불탔다가 1624년 인조 때 중건됐다. 숙종 때 호국사찰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조헌과 영규 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제를 올리고 있다.

행사 뒤 두 일본인은 청주로 이동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가 등을 둘러봤으며, 오는 11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거쳐 출국할 예정이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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