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 일이, 지금도 의문"…이태원참사 외국인 유족의 토로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 생각했는데…지금도 '악몽이었으면' 하는 마음"
"경찰 충분히 배치돼 있었는지 궁금"…방부 처리 시신에도 의문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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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인 파스칼 게네고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25.10.28 yatoya@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조현영 이율립 기자 = "제 아들은 한국의 문화와 역동성을 굉장히 사랑했어요. 그날은 두 번째 한국 방문이었죠."
3년 전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열리는 핼러윈 행사에 방문했다가 참사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인 리마무 게네고씨의 아버지 파스칼 게네고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게네고씨는 "유가족으로서 현장을 직접 찾아와 아들을 추모하고 참사 경위를 이해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고 그에 따른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종로구 '별들의집'에는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10개국 외국인 유가족 34명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위해 모였다. 이들은 29일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 초청으로 방한했다.
유족들은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한 정확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숨진 딸의 모습이 담긴 반소매 티셔츠를 아내와 함께 입고 참석한 노르웨이인 에릭 에벤센씨는 "당일 저녁에 이태원에 충분히 경찰이 배치돼있었는지, 그랬다면 아름다운 청년들이 세상을 떠나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지 그 점이 궁금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어난다"며 "한국이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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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눈물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인 에릭 에벤센 씨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2025.10.28 yatoya@yna.co.kr
이란 희생자 알리레자 올리아이씨의 형 모하마드 레자씨도 "참사가 일어나기 전 한국을 직접 방문해 경험한 적도 있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고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있을 경우 며칠 전부터 경찰이 안전 대책을 세우는데, 참사 당일에도 적절한 대책이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 정부가 유족들에게 참사 정보를 알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에벤센씨는 "이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친구가 이야기해줘서 알게 됐고, 소통한 건 노르웨이 대사관과 아들이 다니던 대학교 정도가 전부였다"며 "그 이후로 한국 정부로부터는 어떤 메시지도 전달받은 것이 없었다"며 울음을 삼켰다.
올리아이씨의 누나 파테메씨 또한 "이란 방송을 보고 사건을 알았다. 한국과 이란은 5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데, 5시간이나 늦게 안 것"이라며 "바로 차를 가지고 한국 대사관에 갔는데 사건이 일어난지도 몰랐고, 한국의 이란 대사관에 연락해서 이 내용을 알았다"고 말했다.
일부 유족들은 희생자 시신이 고국에 도착했을 때 시신에 방부 처리가 돼 있던 점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에벤센씨는 "딸의 시신이 참사 발생 9일 후 고국에 도착했을 때 시신에 방부 처리가 돼 있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절차인지 궁금하다"며 "시신에 그런 처리를 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시신을 공항으로 운반한 한국 장례업체가 발행한 문서만 받았다고 했다. 항공기에 시신을 실으려면 방부 처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란 희생자 소마예 모기미 네자드씨의 언니 마나즈씨도 "제 동생의 시신이 방부 처리된 이유에 대해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났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는데, 납득이 어렵다"며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2주기 당시 유가족협의회에서 유가족들의 한국 방문을 계획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마나즈씨는 "이란 유족들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별도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과 1주일 전에 알려줘서 이미 그런 절차를 진행하기는 늦어버렸다"며 "만약 이란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한국인이 이런 참사의 희생자가 됐다면 한국에서는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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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안전의 길 살펴보는 외국인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참사 현장에 마련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앞에서 외국인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2025.10.28 dwise@yna.co.kr
한편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는 시민들이 남긴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보존하는 '이태원 기억 담기' 프로젝트에 대한 경과 보고가 이뤄졌다.
송해진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이 메시지들은 추모와 애도를 포함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록이나 증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yun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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