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비질한 스님·흰 국화 내놓은 편의점…이태원엔 추모만이(종합)
이태원 참사 3주기 현장에 아침부터 시민 발길…"어른으로서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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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추모용 꽃을 기부한 편의점 [촬영 조윤희 수습기자]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최윤선 조현영 기자 = 이태원 참사의 현장인 용산구 해밀턴 호텔 뒷골목은 참사 3주기를 맞은 29일 온종일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이곳에선 대연각사 진원 불일 스님이 주재하는 추모 법회(천도재)가 열렸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불경 소리가 골목 전체에 울려 퍼지자,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았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49재를 지낸 스님은 추모제를 열기 위해 전날 충남 부여에서 상경했으며, 이른 새벽부터 거리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청소했다.
그는 "희생된 영혼을 위해 쓸어내리는 마음"이라며 "유가족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핼러윈 축제가 재개된다고 해 답답하고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29분, 참사를 추모하는 사이렌이 울리자 골목 인근에 있던 시민들은 눈을 감고 묵념했다.
눈물을 흘리며 묵념하던 원나영(44)씨는 "1·2주기 때는 해외에 있어 오지 못했다"며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다들 느끼고 있다"고 했다.
11시 30분이 되자,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편의점 사장은 헌화용 꽃 두 바구니를 가게 앞에 준비해 내놓았다.
바구니에는 "추모의 마음을 담아 준비했다. 헌화하고 싶은 분은 자유롭게 헌화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밝히기를 한사코 거절한 편의점 사장은 "다 똑같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헌화용 국화를 준비한 것"이라며 말을 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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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주기인 29일 새벽 이태원 거리 청소에 나선 스님 [촬영 조윤희 수습기자]
골목에는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추모 꽃다발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간이 테이블에는 위패와 향도 보였다.
오전 6시께 만난 최훈녕(26)씨는 "놀러 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착잡한 마음이 들어 조의를 표했다"며 "바람 때문에 성냥이 자꾸 꺼져 편의점에서 라이터를 사서 놔뒀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실 여기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납득이 잘 안 간다"며 "많은 분이 잊지 않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외국인들도 추모를 위해 골목을 찾았다. 3년째 한국에 산다는 튀니지 국적의 지드 아맘이(41)씨는 "참사에 관련된 지인은 없지만, 너무 슬퍼서 1주년 때도 왔었다"고 먹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근 상점들은 핼러윈을 맞아 호박, 유령 장식 등으로 꾸민 모습이었으나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골목에는 인파 관리용 바리케이드와 펜스가 쌓여 있었다.
골목 바로 앞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인도 출신 싱(51)씨는 "이곳 사람들은 29일만 되면 다들 마음이 아프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싱씨는 "3년 전에도 새벽 5시 반까지 (참사를) 지켜봤다. 걱정이 됐다"며 "아직도 기도한다"고 손을 모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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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주기인 10월 29일 참사 장소에서 열린 추모법회의 모습 [촬영 조윤희 수습기자]
ys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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