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한숨 돌린 韓경제…'통화스와프 없이' 연 200억달러 조달 과제
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에도 안전장치…"보유 외환 운용수익으로 조달"
"외환시장 충격 없을지 의문…설비투자 위축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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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영접하는 이재명 대통령 (경주=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2025.10.29 superdoo82@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대희 안채원 송정은 기자 = 3천500억달러(약 498조원) 대미 투자와 관련해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지며 한국 경제가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우리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연간 200억 달러'(약 28조5천억원) 한도를 지켜내면서 외환시장 충격 우려도 다소 덜었다.
주력 상품인 자동차의 품목별 관세율을 일본과 같은 15%로 낮추고, 반도체 역시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설계한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 직접투자 연 200억달러 한도 합의…한은 총재 "잘된 협상"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9일 브리핑에서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세부 결과를 발표했다.
큰 구조는 현금 투자 2천억달러(약 284조6천억원)와 이른바 '마스가 프로젝트'로 명명된 조선업 협력 1천500억달러(약 213조4천500억원) 양 갈래로 나뉜다.
현금투자액은 총 2천억 달러로 설정하면서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합의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 측이 제시한 최대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굉장히 잘된 협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에 지난 8월초 외환시장에서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는 (연간) 150억∼200억달러라고 근거와 함께 의견을 줬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브리핑에서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별도 근거도 마련했다"며 "투자 약정은 2029년 1월까지이지만 실제 조달은 장기간 이뤄져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더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투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리금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담았다는 점도 불안감을 줄인다.
양국은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에만 투자금을 넣기로 업무협약(MOU)에 명시하고, 원리금 상환 전까지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기로 했다.
김 실장은 이익 배분 비율 같은 것은 야속한 면도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미국이 수익성이 미미한 분야에 투자를 강제하면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에 또 다른 위협요인이 될 수 있는 '품목별 관세'와 관련해서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에 관해서도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합의했다.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자동차 품목별 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된다. 경쟁국인 일본과 같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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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하는 정책실장 (경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 김용범 "외환자산 운용수익으로 충당 가능"…외환보유액 연 5% 넘게 수익 내야
정부는 통화스와프 없이 연 최대 200억달러를 조달하는 과제를 안았다.
김 실장은 "우리 보유 외환자산의 운용수익으로 대부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우리 외화자산의 운용수익, 이자나 배당 수익이 상당히 많아 그쪽에 기대어 활용할 생각"이라며 "우리 (외환) 시장에서 바로 조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천220억달러(약 601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IMF(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SDR), 금(47억9천만달러)을 제외한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3천784억2천만달러였다.
유가증권에서 연간 5.3% 수익을 낸다면 20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투자공사가 국정감사에서 밝힌 9월말 기준 운용자산은 2천276억달러로, 연간 수익률은 11.73%였다. 이 기준으로는 이미 200억달러를 웃돈다.
정부는 혹시라도 운용 수익이 모자란다면 정부보증채를 발행하되 국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국제 금융시장 등에서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실장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국내 외환시장에 신규로 충격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논의 과정에서 부상했던 통화스와프 체결과 관련해선 선불 투자가 한국 외환시장에 끼칠 수밖에 없는 충격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며 떠오른 의제라고 설명했다.
미국 측도 한국 외환시장 문제에 관해 이해도가 높아졌고, 그 결과 연도별 투자액 한도로 협상 의제가 옮겨가면서 통화 스와프가 자연스럽게 빠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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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맞이하는 이재명 대통령 (경주=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성공한 협상" vs "외환·GDP 영향 없을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점이나 현금 투자액이 우리가 제시한 수준에서 정해졌다는 점 등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장용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일단 우리 요구가 관철됐다고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관세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경쟁국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다면 최소 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내용을 추가로 봐야겠지만 안보적 측면에서도 얻어낸 것이 있다면 굉장히 성공한 협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타결 소식이 전해진 오후 7시 무렵부터 급락해 7시 30분께 1,419.6원까지 떨어졌다. 이날 오후 1시께 정규장 최고점인 1,435.7원보다 16.1원 내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 경제성장률에는 크게 영향은 없겠지만 내년 성장률은 조정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며 "내년에는 무역 불확실성이 다소 사라져 성장률 상향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매년 30조원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가는데 외환시장과 산업에 충격이 없을 수 있겠냐는 지적을 내놨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조달하진 않더라도 외환보유액으로 들어오던 자금이 오지 않는 데서도 영향이 있을 것이란 의견이다.
또, 가용한 외환 운용수익을 다 미국에 쏟아붓다 보면 외환보유액 관리가 빡빡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정치 상황에 따라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걱정이 계속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연구기관 관계자는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수요가 연간 30조원 새로 생기는 말인데, 외환시장에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영향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국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시경제 관점에서 그나마 플러스를 기록했던 부문이 설비투자인데, 기업 돈이든 정부 지원이든 한국 설비를 늘릴 돈이 매년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어떻게 우리 국내총생산(GDP) 구성항목 중 투자에 영향이 없을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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