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일보=석사눌 기자】전라남도 영광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9회 한국전쟁 전후 전라남도 민간인희생자 합동 추모제’에서 정원식 박사((사)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 소장, 조국혁신당 전남도당 위원장)가 특별강연을 통해 한국전쟁 전후 전남지역 민간인 희생 실태와 역사적 책임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했다.
전남 희생자 7만 중 3만여 명이 영광에서
정 박사는 “1952년 공보처 통계국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전국 민간인 희생자 59,946명 중 전남이 43,511명(72.6%)을 차지하며, 그중 영광군만 21,225명으로 전국 최대 규모였다”고 밝혔다. 그는 “학계에서는 실제 희생 규모를 2만5천에서 3만5천 명으로 추산하며, 이는 하나의 군(郡)이 사라질 정도의 참극”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식 박사 “영광 민간인희생사, 국가가 외면한 진실… 역사 정의 바로 세워야”
정 박사는 전남이 특히 많은 희생을 겪은 원인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 친일 관료의 재등용, 그리고 전쟁 초기의 공권력 부재를 꼽았다. “호남 지역은 정규전이 없었기에 군경의 통제력이 약했고, 이 틈을 타 좌익 빨치산과 토착 세력 간의 보복성 학살이 잇따랐다”고 분석했다.
영광군, 좌익과 토벌 양측의 교전 속 대참극
그는 영광군의 대규모 희생 배경에 대해 세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 영광은 고려·조선 시대 조창(漕倉)이 설치될 정도로 부유했으며 근대교육이 빨리 도입되어 진보적 사상이 활발했다. 이 사상적 토대가 해방 후 인민위원회로 재편되며 미군정과의 충돌을 낳았다.
둘째, 1946년 미군정이 인민위원회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력충돌이 자생적 좌익 빨치산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여순사건 등을 거치며 교전이 심화되었다.
셋째, 9·28 수복 이후에도 영광 수복은 늦어져 좌익세력과 군경토벌대의 보복성 학살이 반복되었다.
정 박사는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 역시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국민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명예회복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며, “여야 합의에 의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진실과 화해는 정치가 아닌 인권의 문제”
그는 또한 “이 문제는 여야 정쟁의 대상이 아닌 인권의 본질적 문제”라며,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의 눈물을 닦는 일은 국가의 도리이자 시대의 책무”라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은 전남도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전남연합회가 공동 주최했으며, 강위원 전남도 경제부지사, 이개호 국회의원, 장세일 영광군수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진혼무(살풀이)를 시작으로 추모시 낭송, 종교별 기도,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고, 유족들은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속한 출범과 ‘적대세력 희생자’에 대한 법적 보상 추진을 결의문으로 채택했다.
정원식 박사의 강연은 한국전쟁 전후 영광군의 비극적 역사를 되짚으며, 진실규명과 역사적 화해를 향한 공감의 장으로 자리했다.
석사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