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독립투사 아버지 그린 시집 '아버지의 훈장' 발표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자 이선준 선생 이야기 담은 신작
X
이근배 시인, 신작 출간 소감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문학계 원로인 이근배 시인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시집 '아버지의 훈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출간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11.12 jin90@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나 태어난 지 여든 해 되어 / 아버지 이선준에게 주는 훈장을 받았다. /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 '건국훈장 애족장'을 외아들인 내게 주었다 / 세상에! 이런 날이 찾아오다니"(시 '아버지의 훈장'에서)
60년 넘게 시단(詩壇)을 지킨 원로 시인 이근배(85)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이선준 선생(1911∼1966년)을 향한 마음을 담은 시집 '아버지의 훈장'을 펴냈다.
시인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시집은 지난 10년 동안 써온 시를 엮었다"며 "이 가운데는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시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선준 선생은 1930년대 충남 아산에서 주민들에게 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아산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해 농민운동을 이끄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시인은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 손에 키워져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크다가 내 기억으론 열 살 때 처음 아버지 얼굴을 보게 됐다"며 "이후 전쟁(한국전쟁)이 터져 집을 떠난 아버지는 소식이 끊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같이 살았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도 아버지한테 용돈 한 번 받아본 기억이 없고 아버지라고 제대로 불러본 것 같지도 않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번 시집에는 그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동경은 물론 아버지의 훈장을 자랑하고 싶은 시인의 천진한 마음이 솔직하게 스몄다.
"동네방네 아니 온 세상 사람들을 / 다 알아들으라고 떠들고 자랑하고 싶다. / 시를 씁네하고, 또 벼루를 찾아다니는 / 헛 세상을 살아 온 내게 / 너무 고맙게도 나라가 알아서 이렇게 높이 띄워주니"(시 '그날 1945년 8월 15일 아버지는'에서)
이근배 시인이 시집을 발표한 것은 2019년 '대 백두에 바친다' 이후 6년 만이다.
시집의 추천사를 쓴 신달자 시인은 "일찍이 천재 시인이란 시관(詩冠)을 쓰고 계셨지만, 이 시집에도 한 줄 한 줄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남다르다"며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한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시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X
이근배 시인, 시집 '아버지의 훈장' 출간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문학계 원로인 이근배 시인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시집 '아버지의 훈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1.12 jin90@yna.co.kr
시인은 1961·1964년 경향·서울·조선·동아·한국일보 5개 일간지에 시, 시조, 동시 신춘문예에 총 7차례 당선 또는 입선했으며 문공부 신인 예술상을 세 번 받아 '10관왕'으로 불린다. 중앙시조대상, 만해대상, 정지용 문학상 등 무수한 문학상을 휩쓸고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2019∼2021년 예술원 회장도 지냈다. 예술원 역사상 시인이 회장을 맡은 것은 1995∼1999년 조병화 시인에 이어 두 번째다.
시인은 특히 '노래여 노래여', '사랑을 연주하는 꿈 나무', '추사를 훔치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등 수많은 시집을 펴내고도 자신의 시 대부분을 암송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다 외우지 못한다"면서도 자신의 시 '자화상'을 막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낭송했다. 이 시 역시 가족사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는 장학사의 외손자요 / 이학자의 손자라 / 머리맡에 얘기책을 쌓아놓고 읽으시던 / 할머니 안동김씨는 / 애비, 에미 품에 떼어다 키우는 / 똥오줌 못 가리는 손자의 귀에 /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을 못박아 주셨다"(시 '자화상'에서)
jae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