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수사외압 서막은 '尹격노'…특검 수사로 드러난 전모
해병대→국방부→대통령실→경북청 순 '일사천리'로 기록 회수

군검찰은 "수사 외압" 반발한 박정훈 대령에 보복성 항명 수사

국방부조사본부에도 외압…5차례 결과바꿔 임성근 혐의자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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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들어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2025.9.26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외압의 정점으로 지목해 재판에 넘기면서 142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 사건은 순직해병 특검팀 출범의 계기가 된 외압이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행사됐는지 규명하는 게 핵심 과제였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던 2023년 7월 31일부터 국방부 조사본부가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8월 20일 사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긴밀하게 움직이며 조직적인 수사 외압을 가했다고 판단했다.

수사 외압의 주요 단계마다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지시가 있었고 아래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이 실행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게 특검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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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특검 수사 결과 발표하는 정민영 특검보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21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 사무실에서 정민영 특검보가 해병대수사단 수사외압 등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5.11.21 [공동취재] cityboy@yna.co.kr

수사 외압의 출발점은 2023년 7월 31일 오전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의 윤 전 대통령 격노였다.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사단장부터 현장 통제 간부까지 총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피혐의자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세간에 알려진 이른바 'VIP 격노'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집무실에 있던 '02-800-7070' 내선전화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누차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호통을 들은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통화를 끊은 지 14초 만에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의 언론 브리핑 및 국회 설명 취소,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 등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그로부터 1분 43초 후 다시 김 전 사령관에게 애초 분리파견 조치된 임 전 사단장의 정상 근무를 지시했다.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를 결재한 지 하루 만에 대통령 '질책 전화' 한 통으로 입장을 뒤바꾼 것이다.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임 전 사단장의 분리파견 전자문서가 결재된 지 1시간 40분 만에 취소 공문이 기안됐다.

동시에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수정하려는 시도도 시작됐다.

이 전 장관은 당일 오후 1시 30분께 장관 주재 긴급현안회의를 열어 수사 결과 변경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이튿날인 8월 1일 김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달라고 압박했다.

당일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도 박 대령에게 전화해 "혐의자, 혐의 내용, 죄명을 다 빼라.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했다. 이에 박 대령이 "말조심하라. 수사 외압으로 느낀다"며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박 대령은 8월 2일 법령에 따라 수사 기록의 경찰 이첩을 강행하려했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대통령실까지 퍼져나갔고, 회수 협조 요청도 일사천리에 경북경찰청까지 전달됐다.

김 전 사령관→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순으로 이첩 사실이 보고됐고, 이후 조 전 실장→이시원 전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경북청 등을 거쳐 회수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전달됐다. 이 과정은 모두 1시간 30분 만에 이뤄졌다.

박 대령의 이첩 시도가 무산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보복성 수사도 시작됐다.

당일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은 차관회의 도중 윤 전 대통령에게서 "채해병 사망 사건 이첩에 관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곧바로 유 전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전 검찰단장에게 기록 회수와 박 대령에 대한 선(先)보직해임, 항명수사를 지시했다.

해당 지시가 있은 지 불과 40여분 만에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됐고 그로부터 2시간 뒤 김 전 단장은 박 대령에 대한 본격적인 항명 수사를 개시했다.

검찰단은 8월 14일부터 30일까지 박 대령에 대해 두 차례 체포영장,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특검팀은 김 전 단장이 박 대령에게 항명 또는 상관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신병 확보를 시도했다고 봤다. 특검팀은 이러한 판단에 기반해 9월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후 영장이 기각되기까지 박 대령을 약 6시간 46분간 구금한 것에 직권남용감금 혐의가 있다고 보고 김 전 단장의 공소장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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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해병특검, 수사 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21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 사무실에서 정민영 특검보가 해병대수사단 수사외압 등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5.11.21 [공동취재] cityboy@yna.co.kr

경찰로부터 회수된 채상병 사건 기록은 유 전 법무관리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조사본부에 넘어갔고, 이때부터 조사본부를 향한 두 번째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과 마찬가지로 임 전 사단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는데, 이러한 중간 결과를 보고하자 박 전 보좌관은 '현재 수사 기록만으로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 제한된다' 등 문구로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박 전 보좌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조사본부는 8월 15∼20일 재조사 기간 5차례에 걸쳐 결과를 수정해야 했다.

해병대 수사단, 국방부 조사본부를 향한 일련의 수사 외압이 이뤄진 결과, 당초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을 혐의자로 적시했던 수사 결과는 최종적으로 혐의자가 대대장 2명으로 축소된 채 경찰에 넘어갔다.

특검팀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국방부와 군검찰이 허위 문서를 작성해 배포하거나 거짓된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한 점도 공소장에 적시했다.

국방부 내에서 작성된 '국방부 괴문서'가 대표적이다. '해병대 순직 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관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가 미흡했고 윤 전 대통령의 격노나 수사 개입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박 대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자료도 의도적으로 사건 편철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팀은 군검찰이 무리한 신병확보 시도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류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win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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