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금산사 대적광전

Ⅱ. 『능가경』의 성립과 사상사적 위치

종상스님(본지 발행인)

1. 『능가경』의 성립연대 검토

(불교일보=석사눌 편집위원) 불교에는 다양한 경전이 존재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는 방편을 택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다른 이유로서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계시 종교가 아닌 불교에서 다양한 경전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결과는 대승불교에서 더욱 발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팔만대장경’이라는 다양한 경전이 존재하는 불교 경전, 특히 대승불교 대장경에서 하나의 경전을 선택하여 텍스트로 삼아 연구하려고 할 때, 먼저 경전의 성립을 확인하는 일은 필수 불가결한 전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대승불교 발달사에서 연구 대상인 그 경전의 위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 경전이 전하는 사상, 철학, 교리의 특징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과정은 경전을 매개로 대승불교의 새로운 교학적 측면을 발견하는 작업으로 의미가 있다. 이 경우 본 연구가 논의하고자 하는 텍스트인 『능가경』의 경우는 특히 중요하다. 현재까지 학계에서 벌어지고 논쟁 중 성립과정, 편찬연대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승 경전은 3기로 나누어 사상적 발전단계를 구분하는 논의에 의지할 때, 『능가경』은 어느 시기에 성립되었을까? 『능가경』의 성립연대와 관련하여 주요한 잣대는 유식 사상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세친이다. 현재까지 『능가경』의 성립연대를 두고 학계에서는 세친 이후와 이전설로 나뉘었다. 말하자면 대승 경전의 발전단계 중에서 제2기와 3기 중에서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 논의가 먼저 진행된 것은 일본학계였다.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는 이 문제에 대한 일본 불교학계의 논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한편 『능가경󰡕의 주요교리인 오법, 삼성(三性), 팔식, 이무아(二無我)는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분명히 유가행파의 유식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특히 팔식을 언급하는 것은 [『능가경󰡕이] 무착의 섭대승론 이후[의 저작이라는 의미이고, 더욱이 무착의 논서에는 물론이고 세친의 저작에도 󰡔능가경󰡕에 대한 인용이 없는 것으로 모아 본 경전의 성립을 세친 이후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세친의 연대를 여러 자료와 역사적인 배열순서로부터 추정하여 320~400년경의 인물로 본 우이(宇井) 박사는 그의 『인도철학사』(昭和 7년) 중에서 본 경전을 제3기의 대승 경전으로 규정했다. 제3기란 세친의 작품에서 그 경명이 언급되지 않는 경전류를 말한다. 이 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상당히 유력한 학설로 간주된다.

[하지만] 세친이 『능가경󰡕의 존재를 알았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는 상당히 결정하기가 어렵다. 야마구치(山口益) 박사는 그의 『석궤론』 연구(大乘非仏說에 대한 世親의 論破…중략)에서 이 『석궤론󰡕에 『능가경』 게송품의 세 게송이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더욱이 후나바시 나카야(舟橋尙哉)씨는 그 게송이 송역(宋譯)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석궤론󰡕의 저자가 티벳역에서 말하듯이 세친이라는 점이 틀림이 없다면 󰡔능가경󰡕은 분명히 세친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 된다.

『능가경』의 성립이 세친 이후인가? 이전인가? 일본학계에서 이 논쟁은 아직도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여기서 개략적으로 논의하면, 일반적으로 『능가경』의 성립연대는 유가행유식학파(Yogacara school)의 성립 이후, 특히 세친 이후로 논의되어 왔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능가경』이 유가행유식학파의 중심 사상인 유식(唯識, vijñaptimatra)과 여래장(如來藏, tathāgatagarbha) 사상을 설하고 있는 것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능가경』의 성립연대를 최초로 제기한 우이 하쿠주(宇井伯寿)를 비롯한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 그리고 독일의 저명한 유식불교학자인 램버트 슈미트하우젠(Lambert Schmithausen)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능가경』은 대승 경전 발달사에서 제3기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이다. 이는 무착(無着, Asańga, 310~390 추정)과 세친 이후에 해당한다. 이 경전은 4세기 말에 이미 유통되었고, 세친은 4세기경에 생존한 인물이다. 따라서 능가경이 세친보다 이후에 편찬되었음이 확실하며, 그 이유로는 용수의 시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이 『능가경』에 설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착과 세친의 저서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팔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ñāna)과 여래장 사상을 동일시하는 독특한 사상을 『능가경』이 설하고 있는 점을 바탕으로 이 경전은 세친보다 늦게 편찬되었다고 생각한다.

스미트하우젠의 주장은 더욱 적극적이다. 그는 논문 「바수반두와 『능가경』에 대한 연구노트(A Note on Vasubandhu and the Laṅkāvatārasūtra)」에서 『능가경』이 세친의 󰡔유식삼십론』의 20과 28번 두 게송을 인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슈미트하우젠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학문적 명성과 함께 이후 오랫동안 세계불교학계에서 반론을 불허하는 하나의 정설로 굳어져 왔다.

『능가경』의 성립연대가 유식사상을 확립시킨 세친 이후라는 주장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도전을 받게 된다. 『능가경』이 세친보다 앞서 편찬되었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능가경』이 『유식삼십론』의 두 게송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세친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스미트하우젠의 주장에 대해 박창환은 “역으로 세친의 󰡔유식삼십론󰡕이 『능가경󰡕의 상기 구절을 인용했다고 본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의문을 예상한 듯 스미트하우젠도 해명성 장치를 해두었다. 그렇게 되면 세친에게 표절(plagiarism) 혐의를 안기는 불합리함이 초래된다는 내용이다.박창환은 슈미트하우젠의 이런 해명성 발언뿐만 아니라 󰡔능가경󰡕이 󰡔유식삼십론󰡕을 인용했다는 가설 자체가 개연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능가경』이 세친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주장에 비판적인 논자들이 근거로 제시한 문헌 자료는 세친의 저서인 『석궤론(釋軌論, Vyākhyāyukti)』이다. 야마구치(山口益)는 『능가경』을 『석궤론』과 비교한 결과, 『능가경』의 제10품 「총품」에 있는 게송인 135, 136, 137 세 개의 게송들과 유사한 게송이 『석궤론』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연구 결과는 세친이 『석궤론』을 편찬할 때 『능가경』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후나바시는 야마구치가 발견한 세 개의 게송을 『능가경』의 제3품인 「무상품』에서도 발견했다. 「총품」의 135, 136, 137의 세 개의 게송들은 「무상품」의 35, 36, 37번에 해당한다. 적어도 이 주장에 의하면 『능가경』의 성립연대가 세친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석궤론』은 세친이 대승으로 전향한 이후 해석학적인 논변을 통해 대승 경전이 불설(佛說)임을 옹호하고자 한 텍스트이다. 『구사론』 이후 세친의 사상 발전 방향을 예측하게 해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따라서 『석궤론』에서 『능가경』의 어떤 게송들이 인용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세친 사상과 『능가경』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물론 세친을 잣대로 성립연대를 추정하는 학계의 논의과정으로 볼 때, 『석궤론』에서의 『능가경』 인용은 『능가경』의 성립연대가 세친 이전이라는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슈미트하우젠은 『석궤론』의 『능가경』 인용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이유로 들고 있는 근거는 『석궤론』에서의 『능가경』 인용에 관한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다카사키의 연구 결과이다. 실제로 다카사키는 『유가행파의 형성(瑜伽行派の形成)』에서 “󰡔능가경󰡕은 그 내용상 유식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무착의 저서에는 전혀 인용되지 않고, 세친의 저서에도 『석궤론』 중에 경명 없이 인용된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예.”라고 하였고, 나아가 “그 외에 세친의 『유식삼십송』과 극히 유사한 학설이 있는데, 그것이 󰡔능가경󰡕 이전에 나타난 교설로 추정된다는 난처한 문제를 안고 있다.”라고 하여 좀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서 다카사키는 󰡔석궤론󰡕의 󰡔능가경󰡕 인용과 관련된 야마구치나 후나바시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말하면 어떤 형태의 󰡔능가경󰡕이 세친 이전에 존재했으며 세친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능가경󰡕과 세친의 󰡔유식삼십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능가경』은-인용자) 세친보다 다소 앞선 초기유가행파의 논전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高崎說). … 무착, 세친에 의해 확립된 유식설을 본 경이 숙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믿기 어렵다. [중략] [그렇다면 『능가경󰡕과 「유식삼십송」 사이에 유사구절이 있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약 『능가경』이 『삼십송』의 요지를 세존의 所說로서 기술한 것이라면(경전이 論典을 인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논전을 世尊所說의 이름 하에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재차 『능가경󰡕은 세친 이후의 저작임이 확인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내용적으로는 『삼십송』이 종래 유식의 정설을 게송의 형태로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공통의 원천으로부터 인용한 것으로 보아 해결은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능가경』의 유식설이 세친의 『삼십송』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후대의 이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사실은 필시 『능가경』의 연대를 보다 더 올려 잡는 것보다는 오히려 『삼십송』의 저자를 5세기의 인물로 보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게 될 것이다.

다카사키는 다른 논문에서 󰡔능가경󰡕과 세친 저작에서의 “manas” 개념의 용례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능가경󰡕이 세친의 유식설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능가경󰡕의 연대가 세친보다 조금 앞선다는 태도를 도출한다.이는 지금까지의 다카하시의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카사키의 입장이 슈미트하우젠의 가설을 입증은커녕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석궤론』의 『능가경』 인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박창환은 슈미트하우젠이 주장하는 것처럼 󰡔능가경󰡕이 세친을 인용한다기보다는 그 역의 개연성이 더 높으며 『능가경』의 성립연대 역시 세친 보다 앞선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수아의 연구는 좀 더 구체적이다. 그는 『능가경』이 『유식삼십론』의 게송을 인용하고 있다는 근거로 그 성립연대를 세친 이후라고 한 기존의 연구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능가경』이 세친 이전에 성립되었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밝힌 그는 근거로서 한역대장경에 수록된 제바(提婆)의 『능가경』 주석서를 제시한다. 『제바보살파릉가경중외도소승사종론(提婆菩薩破楞伽經中外道小乘四宗論)』과 『제바보살석릉가경중외도소승열반론(提婆菩薩釋楞伽經中外道小乘涅槃論)』이 그것이다. 두 주석서는 10권 『능가경』을 한역한 보리류지(菩提流支)가 A.D.513년에 한역했다. 『능가경』의 두 주석서를 지은 제바는 3세기경의 남인도 출신으로 대승불교 철학자이다. 산스크리트명은 Kāņa-deva 또는 Aryadeva(提婆, 170~270?), 한역으로 가나제바(迦那提婆), 줄여서 제바라고 한다. 그는 중관파의 선조 용수(龍樹)의 제자로, 공관(空觀)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선양했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파사(破邪)의 강조에 있다고 하며, 누차에 걸쳐 외도(불교 이외의 종교, 철학)를 비판했다. 저작에는 『백론(百論)』, 『사백론(四百論)』, 『백자론(百字論)』 등이 있다. 분량이 적고 짧은 제바의 두 주석서를 검토한 논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비록 제바의 주석서가 짧은 내용을 담고 있으나 『능가경』의 핵심사상을 소승과 외도의 학설을 비교하며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주석서가 능가경』의 주석서임과 제바의 저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능가경은 이미 제바의 시대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기존 학자들의 견해는 능가경』이 세친 이전과 이후라는 두 개의 학설로 나누어진다. 나의 견해는 『능가경』이 세친 이전에 편찬되었음에 동의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바의 주석서를 통해 4권 『능가경』이 제바의 시대에 이미 존재함을 밝혔다.

『능가경』의 성립연대와 관련하여 초기에 강력하게 제기되었던 세친 이후의 설은 현재로서는 매우 수세적이다. 세친의 생몰연대 역시 불명확하지만,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4~5세기 인물로 통용되고 있다. 3세기 인물인 제바 시대에 『능가경』과 관련이 있는 두 주석서가 편찬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할 나위 없이 『능가경』의 성립연대가 세친 이전임을 논증하는 것이 된다. 우리의 입장 역시 여기에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