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성찰 주제 :자기성찰 방법은 무수히 많으나 선도회는 그 가운데 <無門關> 점검 과정을 통해 삶 속에서 자기성찰을 지속하며, 체득되는 깊은 통찰체험을 바탕으로,‘자각각타(自覺覺他)’의 가풍을 선양(宣揚)한다.

1) 자기성찰 자료 1: <無門關> 第一則 조주구자趙州狗子

本則: 趙州和尙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 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眉毛厮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麽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豪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撕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如呑了箇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 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戱三昧

且作麽生提撕 盡平生氣力 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 一點便著

頌曰 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요처(要處)

1) 석가세존께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고 했으나 조주 선사는 '구자무불성'이라 외쳤다. 어느 분이 옳은가?

2) 조주 선사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왜 '무(無)'라고 답했을까?

3) 다시 '여러분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4) 끝으로 역대 조사들이 각각 나름대로 '조주무자'에 대해 한 마디씩 했는데 이 경계들은 서로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사실 물음은 각각이나 누구나 목숨을 걸고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무無'자字란 의심덩어리와 자연히 하나가 될 것이며 이렇게 될 때 이 물음들은 일시에 한 꼬치에 꿰어지리라!

조주무자(趙州無字)

본칙: 어느 때 한 승려가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 “무無!”라고 대답했다.

평창: 무문 선사 말하기를, “참선은 반드시 조사들의 관문을 투과하지 않으면 안 되며 오묘奧妙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분별심을 끊어버려야만 한다. 따라서 조사관을 투과하지 않고 분별심을 끊지 못하는 자들은 초목에 기숙寄宿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백魂魄들이 될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조사관이란 어떤 것이냐? 다만 이 일개一箇의 ‘무無’라는 자字 - 이것이 종문宗門의 유일唯一한 관문인 것이다. 그러한 연유緣由로 이것을 이름 붙여 ‘선종무문관’이라 한다. 이 관문을 투과한 자는 비단 가까이에서 조주 선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대 조사들과도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고 얼굴을 맞대고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어찌 경쾌하지 않으리오! 이 관문을 투과하려 하지 않겠는가! 360개의 뼈마디와 84000개의 털구멍으로, 즉 온 몸으로 의단疑團을 일으켜 밤낮으로 ‘무無’자字를 참구하라.

이 ‘무無’자字를 ‘허무虛無의 무無’라고 헤아리지 말며 ‘유무有無의 무無’라고도 헤아리지 말라. (이것은) 마치 빨갛게 달군 쇠구슬을 삼킨 것과 같아서 토해내려 해도 토해낼 수 없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쁜 지식들을 전부 탕진하여 수행이 무르익게 되면 자연히 모든 차별상은 한 덩어리로 뭉쳐지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꿈을 꾼 벙어리와 같아서 다만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러다) 갑자기 (뭉쳐졌던 이 의심덩어리가) 대폭발을 일으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관우 장군의 대도大刀를 빼앗아 손에 넣은 것과 같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것과 같고,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지라도 자유자재를 터득하여,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행하여도 해탈 무애한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겠는가? 평생 동안 온 힘을 다하여 이 ‘무無’자字를 참구하라. 끊임없이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마치 등불을 켤 때처럼 법등法燈을 밝히게 될 때 주위의 어둠은 일시에 광명으로 빛나리라.

송: 송하여 가로되,

개의 불성(에 관한 물음에 대한 조주의 ‘무無’라는 외침!)

석가의 바른 가르침을 몽땅 드러냈네.

(그러나) 조금이라도 ‘유무有無’에 걸리면

몸을 상傷하고 목숨을 잃으리라.

조주무자 제창(提唱)

이 화두의 핵심은 경전(經典)에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모든 만물은 다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왜 조주(趙州) 선사께서는 "무(無)!"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有(있다)無(없다)'라고 할 때의 '무(無)'라는데 걸리면 이 화두는 평생 해결 못하는 난제(難題)로 남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유(有)무(無)를 초월할 것인지는 각자가 진지하게 체득해야 할 일이다. 사실 조주 스님은 불성(佛性) 자체에 관한 자신의 선적(禪的) 체험을 바탕으로 본인도 우주도 '무(無)'자(字)와 일체가 되어 물음을 던진 승(僧) 앞에 그 답을 내던진 것이었다.

자! 여러분! 불교에서는 모든 만물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조주 스님은 '무(無)!'라고 했는지에 관해 여러 조사어록(祖師語錄)들에 담겨있는 언구(言句)들은 모두 다 집어던지고 직접 다리를 틀고 앉아 '조주무자(趙州無字)'와 철저히 한 몸이 되어 조주 스님의 배짱을 스스로 꿰뚫어 보시기 바란다!

한편 석가께서는 모든 만물은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설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하찮은 개라고 할지라도 불성이 있는 것이나 조주 스님은 어떤 승의 질문에는 "무(無)!"라고 대답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날은 다른 승이 꼭 같이 물었는데 이때는 "유(有)!"라고 대답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조주 스님의 '유'와 '무'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뜻의 '유'나 '무'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며, 사실 팔만사천 법문을 다 뒤져보아도 이에 대한 견해는 결코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 체득해야만 조주 스님의 배짱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참고로 선사 몇 분의 '조주무자'에 관한 게송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무문관'을 편찬한 무문 선사는 남송 시대인 1183년 항주(杭州) 전당(錢塘)에서 태어나 1260년 4월 7일 78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는데 당시 상황은 주위 여러 나라의 압력을 받아 남송조(南宋朝)가 망해가고 있던 시기였다. '무문혜개선사어록'에 보면 무문 선사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공안을 가지고 월림사관(月林師觀) 선사 밑에서 6년 간 열심히 수행하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알리는 큰 북소리를 듣고 깨달음에 도달하였으며, 이때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청천백일에 천둥이 치니

지상 위의 모든 것이 눈을 뜨고

태양 아래 만물이 일시에 머리를 숙이니

수미산(須彌山)이 뛰어올라 어깨춤을 추는구나.

다음날 무문은 월림 선사에게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제시하고 스승은 그가 깨달았다는 것을 인가(印可)하였다. 그 후 그가 동가의 용상사에서 제창했던 48칙의 공안들을 한데 묶어 선종 최후의 공안집인 '무문관'을 간행한 것은 선사의 나이 46세 때였다. 그리고 만년에는 조용히 은거하며 호반에서 유유자적한 날을 보내려고 했으나 구도자(求道者)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서산대사가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인용한 '조주무자'에 관한 옛 어른[古人]의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이 있다.

조주로인검趙州露刃劍 조주의 예리한 칼이

한상광염염寒霜光炎炎 서릿발처럼 번쩍이네.

의의문여하擬議問如何 무어라 물을 것인가?

분신작양단分身作兩段 몸뚱이가 두 동강 나리!

그리고 삼일 운동을 일으켰던 33인의 한 분이신 용성(龍城) 노사께서는 이 '조주무자'를 투과하신 경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셨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함은

조주 스님의 망령된 분별이요

봄날 동쪽 호수의 물은 푸르른데

백구는 한가로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구나!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조주망분별趙州妄分別

동호춘수록東湖春水綠 백구임부침白鷗任浮沈

한편 필자의 스승이셨던 종달 이희익 노사께서는 1984년에 펴낸 자서전(自敍傳) '인생人生의 계단階段'에서 '조주무자'의 경계를 다음과 같이 나투셨다.

간신히 조주무자를 얻어

평생을 쓰고도 다 못쓰고 가노라!

재득조주무자纔得趙州無字

일생수용불진一生受用不盡

덧붙여 젊은 수행승 시절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통독했던 일본 임제종(臨濟宗)의 중흥조(中興祖)인 백은(白隱) 선사와 그 스승인 정수(正受) 노인 사이에 다음과 같은 재미나는 선문답이 있다. 정수 노인이 백은에게 물었다. "조주의 '무(無)'라는 것은 무엇인가!" 백은이 의기양양하게 "우주에 충만해 있으며 손을 대려야 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즉시 정수 노인은 손을 뻗쳐 백은의 코를 잡아 비틀며 "나는 얼마든지 손을 댈 수 있지!"하며 소리 내어 크게 웃고는 "이 토굴 속의 사선(死禪) 중아! 그런 '무(無)'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하며 제자 백은을 다그쳤으며 백은은 이를 큰 깨달음을 얻는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 참고: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 살았던 종심(從諗) 선사(778-897)는 120세까지 산, 드물게 장수한 선사였으며 그의 어록(語錄)인 조주록(趙州錄)은 지금도 선가(禪家)에서 널리 참구되고 있다. 한편 그에 의해 만들어진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는 가장 많은 수행자들이 씨름해오고 있는 선종(禪宗) 최고의 화두로 본칙(本則)과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의 선적 체험이 그대로 담긴 평창(評唱: 선사가 자신의 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고인古人의 화두에 있는 문답에 비평을 가한 글) 및 송(頌: 본칙에 담겨 있는 선지禪旨를 단적端的으로 들어낸 간결한 시)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필자의 경우 매일 좌선을 시작할 때 반야심경과 함께 불퇴전의 수행자들에게 매우 요긴한 무문 선사의 조사관에 관한 이 평창을 늘 원문(原文)으로 염송하며 온 몸에 새기곤 한다.

法境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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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도성찰나눔실천회 법경(法境) 박영재 법사


■법경(法境) 박영재 법사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 종달(宗達) 이희익(李喜益) 노사 문하로 입문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