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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경』의 수행론 [3]
종상스님(본지 발행인)
2. 『능가경』의 유통 과정
(불교일보=석사눌 편집위원) 『능가경』 범본은 10만 송본, 3만6천 송본 및 약본인 4천 송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범본 불경이 산실한 데 비해 이 경의 범본은 다행히 현존한다. 네팔에서 전하는 범본 『능가경』을 일본학자 난조 후미오(南条文雄)와 가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가 1923년 교정, 출판하였다. 이 경의 번역본은 한역본과 티베트본이 있다. 한역본은 4종으로 모두 약본인 4천 송의 번역이다. 그 가운데 담무참(曇無讖, 385~433)의 역본인 『능가경』 4권은 오래전에 실전되었다. 따라서 현존하는 한역 『능가경』은 세 본이다. 모두 『대정장』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세 권 가운데 가장 먼저 한역된 『능가경』은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다. 남북조 유송(劉宋)의 원가(元嘉) 12년 (435년)에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금릉(金陵, 현 남경 부근)의 초당사(草堂寺)에서 번역하였다. 4권으로 현존하는 세 역본 가운데 가장 분량이 적다. 『사권 능가경(四卷楞伽經)』、 『송역 능가경(宋譯楞伽經)』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능가경』은 전체 4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품명이 모두 「일체불어심품(一切佛語心品)」으로 실제로는 품의 구분이 없다. 이 경의 구성상의 특징은 삼분과경(三分科經) 중에 유통분(流通分)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경을 번역한 이상규는 “이 경이 주로 수행자를 염두에 둔 경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하였다.
이 경은 네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내용은 7권 본 『능가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7권본 가운데 맨 앞의 「나바나왕권청품(羅王勸請品)」과 「다라니폼」 및 「게송품」이 없을 뿐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다. 이 경은 문장이 간결하지만, 고풍이어서 해독하기에 매우 난해한 편이다. 7권 『능가경』의 번역에 참여했던 현수법장(賢首法藏)은 이 역본에 대해 “…영철한 인재도 이해할 수 없게 하고, 어리석고 범용한 자들이 잘못 이해하게 한다."고 비판하였다. 현재 『대정장』에 수록되어 있는 4권 『능가경』에는 장지기(蔣之奇)와 소동파(蘇東坡)의 두 서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소동파는 4권 『능가경』의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능가경』의 뜻은 그야말로 유현하고 문자는 간고해서 독자가 혹 읽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흩어지고 일부 남은 경문으로 뜻을 얻고, 허망한의 뜻으로 마음을 요달한다고 하는 자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이 경이 세간에서 적막해지고,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4권 『능가경』이야말로 원전에 가장 충실한 번역으로 다른 번역본에 비해 비교적 원초적인 『능가경』의 형태를 전하고 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세 권의 『능가경』 중에 가장 널리 유통되었고, 후술하겠으나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菩提達摩, ? ~ 528?)가 2조 혜가(慧可, 487~593)에게 부촉한 경전으로서 초기 선종의 소의경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능가경』의 주소(注疏)는 대부분 이 경전을 텍스트로 편찬되었을 정도로 권위를 담보하고 있다.
『입능가경(入楞伽經)』은 남북조 북위의 연창 2년(513년)에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낙양의 여남왕(汝南王)의 집과 업도(鄴都)의 금화사(金華寺)에서 역하였다. 별칭으로 『10권 『능가경(十卷楞伽經)』、『위역 능가경(魏譯楞伽經)』이라고 한다. 4권 『능가경』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해서 번역하였다. 10권 18품으로 세 권 『능가경』 중 분량이 가장 많지만, 난삽한 번역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다. 법장은 이 번역본에 대해 “문장과 여러 품은 비록 갖추어졌다 하지만 성의(聖意)가 드러나기 어렵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자(加字)와 혼문(混文)으로 뜻을 파악하는 데 헤매게 만들거나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라고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은 당 중기 우전국(于闐國) 삼장 실차난타(實叉難陀, 700∼704)가 한역하였다. 측천무후의 청을 받아 한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두 가지의 한역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능가경을 한역하게 한 것은 4권 본이 너무 간결하고 고풍스러워 해독에 어려움이 많지만, 10권 본은 문맥이나 용어 등에 문제점이 많음은 물론 매우 난삽하였으므로 독실한 불자였던 측천무후가 재번역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은 주(周) 무측천(武則天) 구시원년(久視元年, 700년)에서 시작하여 당 중종의 장안 4년(704년)에 마쳤다. 범본 『능가경』과 순서와 항목이 같은 7권 10품이다. 별칭으로 『7권 능가경』, 『당역 능가경(唐譯楞伽經)』이라고 한다.
『능가경』의 주소는 다양하게 편찬되었다. 비교적 중요한 것으로는 『입능가경소(入楞伽經疏)』 5권(보리류지)·『능가경소(楞伽經疏)』 7권(원효)·『능가경소(楞伽經疏)』 6권(수隋나라 담천曇遷)·『능가경주(楞伽經註)』 5권(당나라 지엄智巖)·『입능가심현의』1권(법장), 『능가경관기』(감산덕청) 등이 있다. 티베트 대장경인 『서장대장경(西藏大藏經)』 중에도 『성입능가경주(聖人楞伽經註, Áryalaikāvatāravrtti)』)가 있다. 이 밖에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의 『대승의장(大乘義章)』에는 『능가경』의 중요한 연구논저가 있어 중국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능가경』이 유통되었다. 이는 『능가경』이 초기 선종의 소의경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가 『능가경』의 유통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원효는 중국의 많은 주석가들보다 앞서서 이 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널리 인용하였다. 원효의 주석서는 『능가경소』 7권 외에도 『능가경요간(楞伽經料簡)』‧『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 각 1권 등이 있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승기신론소·별기』, 『금강삼매경론』 등 현존하는 원효의 저술 속에는 이 경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어 그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