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대 교황 레오 14세, '화합과 단결' 강조하며 공식 즉위(종합)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서 즉위 미사…팔리움·어부의 반지 착용
200개국 정상·종교지도자, 신도 모인 가운데 교황직 시작 선언
강론서 "빈자 소외시키는 경제체계 상처…세계 화합 위한 교회 단결"
X
'어부의 반지' 착용하는 교황 (바티칸 AFP=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즉위 미사에서 루이스 안토니오 타클레 추기경의 도움으로 손에 '어부의 반지'를 끼고 있다.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신창용 김지연 특파원 =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가 1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집전하며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끄는 교황직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렸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가난한 자를 위해 봉사하며 전 세계의 화합을 이끄는 하나 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오전 9시 7분께 지붕 없는 하얀색 전용 의전차량 '포프모빌'에 오른 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황은 광장을 돌며 "교황 만세'(Viva il Papa)를 외치며 환호하는 신자들에게 미소 지으며 손 들어 인사했고, 신자들이 들어올린 아기들의 이마에 입 맞추며 축복하기도 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입장한 교황은 오전 10시께 대성전 지하에 안장된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에 참배했다.
이후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성인 호칭기도'와 고대 찬가인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신다'(Laudes Regiae)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추기경들과 함께 대성전 내부에서 성 베드로 광장으로 행진했다.
X
교황과 하얀 새 (바티칸 AFP=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이 18일(현지시간) 즉위 미사를 앞두고 파파모빌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도는 가운데 하얀 새가 날아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이 오전 10시 15분께 광장에 설치된 제대에 올라 라틴어로 "형제자매여, 주님께서 만드신 이날에 우리는 이 물의 표징을 통해 우리 세례의 기억을 새로이 합니다"라고 기도하며 미사를 시작했다.
미사 도중 어깨에 걸치는 고리 모양의 흰색 양털 띠 팔리움과 교황의 사도적 임무를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를 착용했다. 교황권의 상징물을 착용함으로써 교황으로서의 직무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의식으로, 이때 레오 14세는 감정이 복받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팔리움은 길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선한 목자로서의 사명을 뜻하며 어부의 반지는 베드로처럼 교회의 일치를 수호하고 신앙을 지키는 교황의 사명을 드러낸다.
콘클라베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이 레오 14세의 손에 반지를 끼웠고 팔리움은 마리오 제나리(이탈리아) 추기경이 걸어줬다.
이어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하는 12명의 대표단이 교황 앞으로 나아가 복종을 맹세했다. 추기경 3명과 주교 1명, 사제 1명, 부제 1명, 두 수도회 총원장(남녀 각각 1명), 한 쌍의 부부, 한 소년과 한 소녀 등 모든 교회 구성원이 대표단으로 선발됐다.
X
즉위 미사 참석한 미국 부통령 (바티칸 AFP=연합뉴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거행된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레오 14세는 이날 개혁파였던 전임 프란치스코보다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탈리아어 강론을 통해 자신을 교황으로 선출한 추기경들이 기독 신앙의 풍부한 유산을 보존할 능력이 있는 목자를 찾아 나섰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도 환경을 위협하고 빈부격차를 만드는 경제 체계를 경계하고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그리고 자신이 이름을 딴 레오 13세 교황과 같이 사회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레오 14세는 "오늘날 우리는 증오와 폭력, 편견, 차이에 대한 두려움, 지구 자원을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제 패러다임이 빚어낸 너무 많은 불화와 상처를 여전히 목도한다"고 짚었다.
이어 무엇보다 세계의 화합, 그리고 이를 위한 교회의 단결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는 "다른 이들을 종교적 선전이나 힘의 수단으로 끌어오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며 예수께서 하셨듯 오직 사랑의 문제"라며 "가장 첫째 소망은 단결과 친화의 상징인 통합된 교회로, 화해를 이룬 세계를 위한 누룩이 되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차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와 모든 민족의 사회, 종교적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X
꽉 찬 성베드로 광장 (바티칸 AF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가 열린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이 인파로 가득하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즉위 미사에는 전 세계 200여개국 정부 대표, 종파를 초월한 여러 종교 지도자가 참석했다.
외국 정상으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교황의 출신국 미국에선 J.D. 밴스 부통령이 참석했고 교황이 시민권을 보유한 페루의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도 자리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밴스 부통령과 악수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들은 지난 2월 말 백악관에서 열린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목소리 높여 언쟁을 벌인 바 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부부와 필립 벨기에 국왕 부부, 에드워드 영국 왕자(찰스 3세 국왕의 동생) 등 외국 왕족도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경축사절단이 참석했다. 종교 지도자로는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 등이 함께했다.
세계 다른 기독교 교파의 지도자도 참석했으며 유대교에서도 랍비 등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보냈다.
X
성베드로 광장 돌며 인사하는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로이터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역사적인 장면을 직접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신자 수만 명이 레오 14세의 즉위를 지켜보며 환호했다. 레오 14세의 출신국 미국의 성조기와 페루 국기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 국기가 광장에 휘날렸다.
로마 경찰은 약 5천명의 경찰력을 배치하고 저격수, 드론 방어 시스템,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즉위 미사가 끝나고 나서 레오 14세는 대성전으로 다시 입장해 미사에 참석한 각국 사절단을 만났다.
cheror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