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로 끝난 트럼프-푸틴 회담…우크라전 휴전 전망 '안갯속'
러 점령지 인정 문제·우크라 안전보장 등 쟁점서 이견 보인 듯
실속 챙긴 푸틴…트럼프, 후속협상서 제재카드 빼들지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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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자회견 하는 트럼프(우)와 푸틴 [앵커리지 타스=연합뉴스. 재판매 및 DB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조준형 박성민 김동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대좌'가 '노딜'(합의없음)로 종료됨에 따라 3년 반 동안 진행돼온 우크라이나전쟁의 출구 찾기는 일단 늦춰지는 형국이다.
이날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양 정상은 "생산적"(트럼프), "건설적"(푸틴) 등의 표현을 써가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의 첫걸음이 될 전투행위 중단, 즉 휴전에 대한 합의를 내놓지 못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뜻을 같이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 등의 후속 3자 또는 다자회담을 통해 최종 합의될 것으로 기대됐던 '휴전'에 대한 언급은 양 정상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합의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합의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후속 협상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는 "난 좀 이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전화할 것이다. 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사람에 전화할 것이며 난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해 오늘 회담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밝히는 등 이날 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러시아 반대편 진영 의견 수렴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 각국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해 들을 러시아의 휴전안이 '전향적'이라고 평가할 경우 우크라이나까지 포함하는 후속 협상의 판이 마련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두 정상이 모처럼 잡은 대면 회담이라는 기회에서 모종의 가시적 합의를 내놓지 못함에 따라 앞으로 협상 전망을 쉽게 낙관하긴 어렵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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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만나 악수하는 트럼프와 푸틴 [앵커리지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금지]
가시적 합의가 불발된 것은 결국 휴전 또는 종전 논의의 핵심인 '영토 재획정'과 대(對)우크라이나 안전보장 제공 등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돈바스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점령 지역을 자신들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서방 병력이 주둔하는 등의 안전보장 방안에 난색을 표했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전부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를 둘러싼 영토 재획정 문제를 협상 대상으로 거론해왔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는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출발점 자체가 러시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수용을 검토할 수 있을 만한 푸틴 대통령의 '양보'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카드를 얼마나 강력하게 거론했는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양 정상이 일단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상황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조만간 후속 협의를 통해 모종의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어 보인다.
그러나 휴전과 관련한 뚜렷한 진전 없이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공세가 계속된다면 이번 회담은 결국 푸틴 대통령이 거둔 '의문의 1승'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고립을 겪어온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전쟁 개전 이후 처음 서방 주요국 정상을 만났고,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푸틴 대통령으로선 외교적 고립에서 일부나마 벗어나는 기회가 됐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또 전쟁 종식을 위한 대화에 응하는 모습까지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의 명분 축적을 한 측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노벨평화상을 목표로 한 여러 국제분쟁 중재 외교에서 '푸틴'이라는 벽 앞에 서게 됐다.
1월 백악관 복귀 이후 캄보디아-태국, 인도-파키스탄, 르완다-민주 콩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간 분쟁 또는 갈등을 중재하며 성가를 높였지만 가장 결정적인 우크라이나전쟁에서는 벽을 만났다.
후속 협상의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손에 쥔 대(對)러시아 제재 카드를 사용할지 여부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27일께 시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이른바 '2차 관세' 카드를 꺼냈다.
러시아와 거래하는 나라에 관세 인상이라는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돈줄을 압박하는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은행에 대한 제재, 러시아산 에너지의 또 다른 주 고객인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등 추가적인 압박 카드가 트럼프 대통령의 주머니 속에 있다.
러시아와의 후속 협상을 추진하면서 이런 제재를 실행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경우 러시아를 움직일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이날 회담을 통해 정상화에 시동을 건 미러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행동을 주저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현재 유리하게 돌아가는 전쟁을 스스로 멈추려 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회견 때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이나 '제재'를 거론하지 않은 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시간과의 싸움'이 현재 불리하지 않다고 보는 푸틴 대통령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지 않을 경우 자칫 푸틴 대통령의 지연작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이날 6년 만에 푸틴 대통령과 악수하고, 회담장으로 가는 리무진 옆 좌석까지 내주며 과거의 '브로맨스'를 떠올리게 한 트럼프 대통령이 '낯빛'을 바꾼 채 러시아에 대한 압박 행보에 나설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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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직전의 트럼프와 푸틴 [알래스카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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