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부작 소설' 완성한 이금이 "저와의 약속 지켰어요"
시리즈 마무리하는 '슬픔의 틈새' 발표…사할린 한인 1세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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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 [사계절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처음부터 3부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앞의 두 소설을 펴내고 보니 일제강점기 전기와 중기를 다룬 작품이었어요. 후기를 배경으로 세 번째 작품을 써서 그 시대 전반을 다루고 싶어졌죠."
이금이(63) 작가가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이산)를 다룬 3부작 장편 역사소설의 마지막 작품 '슬픔의 틈새'(사계절출판사)를 펴냈다.
앞선 두 소설은 2016년 발표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와 2020년 출간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다. 세 작품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일부 인물이 두 작품에 걸쳐 등장하는 등 서로 연결된다.
작가의 설명처럼 '슬픔의 틈새'는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인 1940년대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선 두 소설이 1920년대와 1910년대에 출발한 것을 고려하면 일제강점기 전체를 시리즈로 다룬 셈이다.
이금이는 지난 1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 번째 작품까지 내겠다고 저 자신과 약속했는데, 이렇게 지키게 돼서 안도감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슬픔의 틈새'는 일제가 통치하던 사할린 남부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다.
1943년, 10대 소녀 단옥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충남 공주 다래울을 떠나 바다를 건넌다. 배를 세 번 타는 고된 여정을 거쳐 사할린 탄광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상봉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다시 일본 본토의 탄광으로 끌려간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물자를 조달하려 사할린 조선인 노동자들을 재차 징용한 이른바 '이중 징용' 때문이다.
단옥의 아버지가 징용된 이듬해인 1945년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하고 이어 1948년에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지만, 사할린의 한인들이 기다리는 귀국선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조국에 배신당한 이들은 큰 상심에 빠진다.
"(1949년) 12월 20일, 한국 정부는 사할린 한인들을 사실상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국적법을 제정했다. 한인들 중에는 배신감, 좌절감, 울분으로 뒤범벅된 상처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거나 술이나 노름, 심지어는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도 생겼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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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표지 이미지 [사계절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는 3부작의 첫 작품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에 등장한 태술이 사할린 탄광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이번 소설의 뼈대를 만들었다. 태술은 '슬픔의 틈새'에서 단옥의 아버지와 가까운 동료 노동자로 짧게나마 언급된다.
이금이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집필을 마친 뒤에도 계속 태술이라는 인물이 제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아직 이 인물이 할 얘기가 있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작가가 2018년 우연히 지인들과 사할린을 여행하면서 '슬픔의 틈새'는 더욱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금이는 "운명처럼 태술이 살았던 사할린을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며 "그때부터 사할린 한인들의 자료도 조사하고 동포 어르신들도 찾아보고 우리 역사와 맞물린 장소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슬픔의 틈새'에서 주인공 단옥 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유키에라는 일본인이다. 유키에는 일본인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일본인 어머니가 조선인 탄광 노동자와 재혼했다.
아버지들이 서로 가까운 동료라는 인연으로 유키에와 단옥은 자연스레 친해지고, 이후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여정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임에도 일본인을 주인공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그린 것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투영한 결과였다.
"우리가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과 개인은 가깝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우리 사할린 한인 동포들의 과거 수난을 다루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옥과 유키에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448쪽.
jae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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