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전쟁 과오 강조했지만…식민지배 사죄·반성 언급 없어
개인 명의 메시지서 '역사인식 계승'만 발언…교도통신 "자민당 보수파 배려"
10년 간격 日총리 담화 전통 끊겨…이전 담화보다 형식·내용 면에서 '후퇴'
과거 직시하는 용기·관용 강조…"전쟁 정당화하는 역사수정주의에 경종" 분석도
X
전후 80년 메시지 발표하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도쿄 AFP=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던 전후 80년 메시지를 통해 일본이 제국주의 시기 전쟁에 돌입하게 된 경위를 검증하고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이시바 총리가 지난 8월 23일 도쿄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했을 때 사용했던 표현이기도 하다.
이로써 역대 일본 총리가 1995년부터 10년 간격으로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담화를 발표하고,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던 전통은 사실상 끊겼다.
이시바 총리가 이날 내놓은 '전후 80년 소감'은 개인 명의 메시지여서 정부 전체의 견해를 담은 담화보다는 무게감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시바 총리는 질의응답에서 "반성이라든가 사죄라든가 그런 기분을 포함해서 이것(기존 담화)을 계승한 것"이라며 역사 인식 측면에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후대 아이들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근거로 추가 담화와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압박한 집권 자민당 내 보수파를 염두에 둔 설명으로 분석됐다.
교도통신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사죄는 담기지 않았다"며 역사 인식에서 진전된 기술이 없었던 데는 '사죄 외교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주장하는 자민당 보수파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고 해설했다.
역사 인식이 온건하다고 평가받은 이시바 총리는 이전 총리들처럼 전후 80년 담화 발표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개인 메시지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면서 구심력을 잃었고, 메시지 발표 시기도 정하지 못했다.
거센 퇴진 움직임 속에서 총리직을 지키고자 했던 그는 메시지 발표를 계기로 보수파가 결집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패전일인 8월 15일과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했던 날인 9월 2일을 지나쳐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는 10월 10일에 '소감'을 내놓게 됐다.
이시바 총리의 전후 메시지는 이전 담화와 비교하면 형식과 내용 면에서 후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이 전반적으로 우경화한 가운데 현직 총리로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이번 메시지에서 전쟁에 이르게 된 요인을 종합적으로 기술하고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관용을 가진 본래의 자유주의, 건전하고 강인한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교도통신은 "'왜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가 전후 80년 소감을 꿰뚫는 주제"라면서 "이시바 총리가 정치가 군사에 우위를 갖는 '문민통제'를 핵심으로 민주적 의회와 미디어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고 짚었다.
이어 "지난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수정주의' 확산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가 비친다"며 이번 메시지가 이시바 총리의 '독선적 자기만족'인지 여부는 퇴진 이후 보일 정치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