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민군 민원부장' 정해직 선생, 동지들 배웅 속에 영면
국립5·18민주묘지서 영결식…"올곧음 그 자체로 평생을 살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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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시민군' 정해직 선생 영결식 (광주=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1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시민군 출신 정해직 씨의 민주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5.10.11 in@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민원부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정해직 선생이 민주화 동지들의 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다.
11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등 9개 단체 주관으로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추모곡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울려 퍼지자 조문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정 속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인의 사진을 보며 유족들은 흐느꼈고 오월단체 회원인 옛 동지들은 고개를 떨군 채 묵념했다.
민주화 동지들의 추모사가 이어진 후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채영선 5·18광주민중항쟁 최후의 시민군 동지회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올곧음 그 자체로 평생을 살아온 참교육자 정해직 동지와 영원히 작별하고 있다"며 "남겨놓은 뜻을 우리가 이어가겠다. 부디 편히 쉬시라"고 말했다.
고인은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보성 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시민군 지도부에서 민원부장 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5월 25일과 26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의 대회문을 윤상원 열사 등과 함께 작성했다.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는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구타와 고문을 당했으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5년형으로 감형됐으며 10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후 교단으로 돌아왔으나 항쟁 참여를 이유로 해직됐다.
1983년 특별채용으로 교단에 복귀해 교육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과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가 다시 해직되는 등 평생을 교육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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