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은 부산에서…회동 앞두고 6년전 합의 좌초 공방(종합)
美 "무역법 301조 조사 개시" vs 中 "美가 이행 조건 훼손"

전세계 이목 쏠린 회담 앞 협상력 확보하려는 '샅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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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박성민 김동현 특파원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에서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담판을 코앞에 두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중 정상의 회담(한국시간 30일·부산)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24일(현지시간) 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체결한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여부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에서 열리지만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 회담을 부산에서 "주최"(host)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무역 단절 수준으로 치달았다가 '관세 휴전'을 이어오고 있는 두 나라가 최근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의 '100% 추가 관세 위협' 등으로 맞붙은 데 이어 6년 전 무역합의 이행 실패의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중국이 트럼프 집권 1기 때 미국과 타결한 '1단계 무역 합의'(Phase One Agreement)를 완전히 이행했는지에 대해 무역법 301조에 입각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USTR은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에서 약속한 내용을 완전히 이행했는지, 중국의 약속 불이행에 따라 미국의 상업에 가해진 부담이나 제약이 있는지, 중국의 약속 불이행에 대응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을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이 조사 개시는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를 지키게 하고, 미국의 농민·축산업자·노동자·혁신가를 보호하며, 미국민을 위해 중국과 무역 관계의 상호주의를 강화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의를 부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중국의 무역 정책과 관행을 문제 삼으며 관세로 강하게 압박했고, 양국은 치열한 '무역 전쟁'을 벌이다가 수개월의 협상을 거쳐 2019년 12월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당시 중국은 지식재산권, 기술 이전, 농업, 금융 서비스, 통화와 환율 등의 분야에서 정책 개선을 약속했으며, 특히 그로부터 향후 2년간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의 연간 수입액을 2017년 대비 최소 2천억달러(약 286조원)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은 '2천억달러 수입'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지난 1월 20일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 각서에서도 행정부에 중국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여부를 평가하고, 관세 부과 등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USTR은 "중국은 합의 발효 5년이 지났고, 그간 미국이 이행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 반복해서 대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비관세 장벽, 시장 접근 현안,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 구매와 관련해 1단계 무역 합의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듯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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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의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중국은 "미국의 사실이 아닌 비난과 관련 검토 조처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곧바로 반발했다.

류펑위 주미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수입 확대, 시장 접근성 증대 등 1단계 경제·무역 합의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이는 미국 기업을 비롯한 모든 나라 투자자가 중국의 경제발전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리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러나, 1단계 합의 체결 이후 미국은 수출 통제, 투자 제한 등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련의 제한 조처를 시행하면서 체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및 기타 형태의 압력을 강화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동시에 미국은 인권과 홍콩, 대만, 신장(新疆), 팬데믹과 관련된 허위 주장을 홍보해왔다"며 "이러한 행동은 미중 관계와 경제·무역 관계에 심각한 피해를 유발했고, 정상적 무역 및 투자 행위를 방해하고, 합의 이행에 필요한 조건을 크게 훼손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체결한 무역 합의를 중국이 성실히 이행했지만,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각종 견제 때문에 합의를 다 이행할 수는 없었으니 결국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주장이다.

류 대변인은 "중국은 안정적이고 건실하며 지속 가능한 미·중 경제·무역 관계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잘못된 관행을 즉시 시정하고, 양국 정상 통화에서 나온 중요한 합의를 준수하고, 어렵게 얻은 합의 성과를 보호하고, 미·중 경제무역 합의 메커니즘을 계속 활용하고, 상호 존중과 평등한 협의의 원칙에 따라 대화를 통해 각자의 우려를 해소하고 차이를 적절히 관리하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중 양국이 합의 이행 여부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린 것은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정상 간의 담판에서 자기 쪽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샅바 싸움'인 셈이다.

미국은 거대한 자국 소비시장을 등에 업고서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구실을 찾으면서 중국을 거듭 압박하고 있고, 이에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등 대응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글로벌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인 미·중 간 갈등은 거의 모든 나라의 경제와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에서 그간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역사적 합의가 이뤄질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다.

다만, 양국의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돼 온 데다 입장차가 워낙 커 이번 회담은 당장 시급한 이슈만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캐쉬 파텔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합성마약 펜타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내달 중국을 방문한다고 미국 CBS뉴스가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펜타닐 원료가 멕시코 등지로 1차 수출된 뒤 현지에서 가공돼 미국으로 유입된다고 지적하면서, 관세 등 압박 수단을 활용해가며 중국에 단속 강화를 요구해왔다.

min2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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