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대신 '핵없는 한반도'…당대회 앞둔 北에 화해 손짓
'비핵화' 거부 北입장 고려한듯…北, 당대회 등서 '적대적 두 국가' 노골화 가능성

X
이재명 대통령,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 연설 (고양=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인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의장연설을 하고 있다. 2025.12.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superdoo82@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우리의 대화 제안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향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북한이 이달 중순 노동당 전원회의, 내년 초 당 대회 등을 통해 대남 정책에 있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 전에 북한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 연설에서 "우리에게 놓인 시대적 과제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 적대 해소 ▲ 평화 공존 ▲ 공동 성장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특히 연설 대부분은 북한 문제로 채워졌지만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추구하며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만 했다.

북한을 향해 명시적으로 '비핵화'를 촉구하지 않고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고 에둘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향해 "국제사회의 엄청난 제재를 감수하며 핵무장을 시도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함과 동시에 "우리의 핵무장은 핵 없는 평화적 한반도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한 것도 비핵화 원칙 준수가 북한의 의무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정부의 '중단, 축소, 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비핵화론에 대해 "우리의 무장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비핵화'라는 용어는 피했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비핵화를 뒷전으로 밀어낸 것이라는 비판 가능성에도 이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일부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리해 연내 발표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여기에도 목표의 하나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용상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중론이지만, 진보·보수 정부를 가릴 것 없이 대북정책의 최우선 목표였던 '비핵화'라는 단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X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연설…"비핵화 집념털면 美와 못만날 이유없어"

이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북한의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북한은 이달 중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결산을 하고 내년 초 제9차 당 대회를 열고 향후 5년간의 정책 노선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뒤로는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회의가 열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가 당 대회를 통해 노동당 규약에,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에 각각 반영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문서화를 통해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를 화해 분위기로 되돌리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그 전에 이 대통령이 직접 연설을 통해 북한에 우리의 진의를 거듭 알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연말·연초 정치행사 계기에 대남·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