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지, 부처님 바루가 모셔진 케사리아 대탑(Kesariya Stupa)
■ 케사리아 대탑(Kesariya Stupa) 동영상(불교일보, 불교TV 공동촬영)_
▶ https://www.youtube.com/shorts/jJDG1fUcTXo
인도 순례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 달 예정으로 시작된 인도 순례는 이제 중허리를 지나고 있다. 부처님 성지는 오늘날 비하루주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비하르주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한 동행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지가 있는 곳은 왜 이렇게 불행하냐?”라고 좀 엉뚱한 질문을 한다.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보았다. 내심, 그런 질문을 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귀하가 더 불행하지 않으냐고 반문하고 싶지만, 꾹 눌러 참았다. 물질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는 그들에게 비하르주의 저잣거리를 보면, 그렇게 불행하게 보일 수 있을 거다. 아. 비하르주! 나는 내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타깝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비하르주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나는 인도비하르주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학불기자
일행이 탄 버스는 바이샬리를 향해 달린다. 넓고 넓은 들판이다. 한참을 가는데 왼쪽 들판 한 가운데 작은 산처럼 솟은 탑이 보인다. 케사리아 대탑(Kesariya Stupa)이다. 가이드가 부처님 출가지라고 부지런히 안내한다. 왕궁을 떠난 태자 고타마 싯달타는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행자의 길을 떠난다.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부처님은 대열반의 여정에서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Beluva) 마을에서 마지막 안거를 들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곳을 떠나 쿠시나가르를 향했다. 구법승 당나라 현장(玄奘)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수많은 리차비(Lichavi)족 사람들이 부처님을 따라나섰고, 성의 서북쪽 50~60리 되는 지점에 그들 리차비족 사람들을 돌려보낸 장소에 큰 스투파가 건립되었다.” 부처님과 리차비족 사람들과의 마지막 작별의 장소에 세워진 스투파이다. 그런데 나는 이 거룩한 부처님의 성지를 제대로 순례할 수 없었다. 버스에서 잠시 내려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목적이 인도 전역 순례인 터라, 불교 성지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40여 명의 일행 중에 부처님 제자는 나뿐이고, 불교 성지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곳 인도에 유학한 강박사님뿐이다. 케사리아 대탑은 나에게 있어서 한 달 인도 순례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이곳을 순례한 mjahn21님의 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발우탑으로 향한다. 벽돌로 평지 위에 쌓은 대형 스투파이다. 스투파의 절반은 발굴을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나 있으며, 절반은 아직 발굴하지 않은 자연 상태로 남아 있다. 이 대형 스투파의 각 층에는 과거 수행자들의 수행의 공간으로 짐작되는 작은 감실이 있고, 그 감실마다 부처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부처님 좌상들은 목이 날아가는 등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아마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슬람교가 인도 땅으로 밀려오면서 생긴 불상 훼손의 결과인 것 같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 바이샬리까지는 40km가 좀 더 되는 거리라고 한다. 일행이 모두 승차한 것으 ㄹ본 버스는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내린다. 나는 아쉬워 뒤돌아보곤 하였다. 버스는 이내 케샤리아 대답을 가운데 두고 좌회전을 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학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