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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일보=석종 편집위원) 그런데 말나식은 자아의식의 성립에만 관계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자아의식일 뿐이므로 자아와 대립하는 타아(他我)의 성립에 관해서는 온전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자타를 모두 포괄하는 다른 개념이 요청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뢰야식이다.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아뢰야식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첫째, 아뢰야식이 없다면 번뇌부정품(煩愼不淨品)은 성립할 수 없다.

둘째, 아뢰야식이 없다면 업 염오(業染汚)는 성립할 수 없다.

셋째. 아뢰야식이 없다면 생염오(生染汚)가 성 립할 수 없다.

넷째, 아뢰야식이 없다면 세간정품(世間淨品)이 성 립할 수 없다.

다섯째.아뢰야식이 없다면 출세정품(出世淨品)이 성립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출세간의 모든 것이 성립하기 위한 일체의 종자식(種子識)이다. 모든 것의 성립 가능성을 담지하고 하고 있는 종자가 바로 아뢰야식인 것이다.

원측의 경우는 어떠한가?

바가범(붓다)은 여러 경전 가운데에서 심·의·식 세 가지의 차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집기(集起)를 심이라 하고, 사량을 의라 하고, 요별(7別)을 식이라 한다. 이것이 세 가지의 차별이다. 이 세 가지 뜻은 비록 8식 모두에 공통적인 것이지만 그 두드러진 특징에 따른 것이다. 제8을 심이라 한 것은 (그것이) 제법의 종자를 적집하여 제법을 생기하기 때문이고, 제7을 의라 한 것은 (그것이) 제8식을 연하여 항상 (제8식이)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나머지 6식을 식이라 한 것은 (그것이) 여섯 가지 대상을 그때그때(間斷) 요해하고 분별하여 전변하기 때문이다.

제8 아뢰야식이 심이고, 제7 말나식이 의이고, 나머지 6식이 식임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서 제8 아뢰야식이 제법의 적집과 생기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풀이하자면 18계 전체가 아뢰야식의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차별적이라는 점에서 그 명칭을 달리할 뿐이다. 따라서 18계는 아뢰야식이 연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8계가 아뢰야식의 연기라고 하는 점은 제7 말나식인 의가 아뢰야식을 '연‘하여 그것올 자아라고 생각하고,나머지 6식이 각각의 대상을 요해하고 분별하여 '전변’고 하는 설명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여기에서 근본불교의 ‘연기’라고 하는 용어가 ‘집기’ 혹은 ‘연전(緣轉)’으로 대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뢰야식 연기 혹은 아뢰야식의 전변이 18계를 형성하므로 모든 것은 아뢰야식으로 귀착되며 그 점에서 유식의 식은 아뢰야식이고 아뢰야식이 연기의 장이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중변분별론』의 1.10-1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덮어 가리기 때문에,②성장시키기 때문에,

③인도하기 때문에,④섭지(攝持)하기 때문에,

⑤완비되기 때문에, ⑥세 가지 분별이 있기 때문에,

⑦수용하기 때문에,⑧일으키기 때문에,

⑨결합시키기 때문에. ⑩현전(現前)하기 때문에,

⑪괴로움 때문에, ⑫중생은 괴로워한다.

세 가지. 두 가지 그리고 일곱 가지의 잡염(雜染)은 허망분별에 의한 것이다.

①에서부터 ⑫까지의 각각은 차례대로 12연기의 각 지(支)에 해당하며 이 모든 것이 허망분별, 즉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함으로써 유식을 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