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기술 다 완벽"…'백조의 호수'로 한국팬 사로잡은 심킨
섬세한 감정 연기 돋보여…3연속 540도 회전에 객석 탄성
홍향기 '백조'·'흑조' 연기로 관객 매료…'칼군무' 등 볼거리도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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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러시아의 세계적인 발레리노 다닐 심킨(38)이 국내 첫 전막(全幕) 공연 '백조의 호수'에서 단번에 팬들을 매료한 비결은 특기인 '3연속 540도 회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연인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결국 그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 지크프리트 왕자의 비애를 완벽하게 표현한 연기력이었다.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심킨의 출연이었다. '하늘을 나는 무용수'라고 불리며 전 세계 발레 팬들의 마음을 훔친 그가 처음으로 주역으로 나선 국내 전막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개막일 저녁 열린 심킨의 무대가 열리자 장내는 대형 공연에 목말랐던 발레 애호가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객석은 그가 등장할 때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1막에서는 심킨 특유의 다이내믹한 동작들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연륜을 느낄 수 있는 연기가 펼쳐졌다.
특히 저주에 걸려 백조가 된 오데트 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지크프리트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공연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술보다는 캐릭터 표현에 초점을 두겠다"고 했던 심킨은 그 약속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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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듯한 다닐 심킨의 점프 동작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심킨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관객을 흡족하게 했다. 1막에서 숨을 고른 그는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2막이 시작되자 나이를 잊게 하는 존재감을 뿜어냈다. 공중을 나는 듯한 독무에 이어 '흑조' 오딜과의 환상적인 2인무가 펼쳐지자 오페라극장은 마치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자칫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심킨은 전매특허인 3연속 540도 회전을 차분히 마무리해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오데트와 오딜 역의 홍향기(36)의 변화무쌍한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2016년부터 백조의 호수의 주역을 맡은 홍향기는 '백조' 오데트를 연기할 때는 기구한 운명에 절망하는 처연한 모습을, '흑조' 오딜로 무대에 오를 땐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악당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홍향기의 흑조 연기가 돋보였다. 지크프리트를 유혹하기 위해서 짓는 도도한 미소는 내심 백조를 응원하는 관객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자신을 오데트로 착각하고 지크프리트가 건넨 꽃다발을 집어던지고 비웃는 연기는 마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섬찟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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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를 연기하는 홍향기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홍향기는 농익은 연기와 함께 현란한 발레 기술로도 관객을 매료했다. 정교한 폴 드 브라(발레에서의 팔 동작)와 섬세한 손목의 움직임으로 백조와 흑조의 미세한 차이를 관객에게 충분히 납득시켰다. 특히 2막 지크프리트와의 2인무에서 고난도 '32회전 푸에테'를 완벽하게 선보이자, 관객들은 '홍향기'와 '발레리나'를 합성한 '향기리나'라는 별칭을 연호하기도 했다.
튀튀 복장의 유니버설발레단 소속 발레리나들의 군무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였다. 백조와 흑조로 나뉜 발레리나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는 모습은 마치 잘 조련된 해군 함선들의 움직임 같았다.
지크프리트 왕자와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공주의 이야기를 그린 '백조의 호수'는 27일까지 공연된다. 심킨과 홍향기는 23일 공연에서 한 차례 더 호흡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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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인사하는 다닐 심킨과 홍향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러시아 발레 스타 다닐 심킨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홍향기가 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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