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에 드리운 과거사…사도광산 갈등 여전
李대통령 '방일 먼저' 적극적 대일외교에도 부응 않는 일본
작년 추도식 파행 데자뷔…'투트랙 접근'으로 한일관계 큰 영향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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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찾은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 (사도[일본]=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추도식을 마친 뒤 광산 내 시설물 설명을 듣고 있다. 2024.11.25 sungjinpark@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김지헌 김지연 기자 = 출범 이후 대일 외교에 상당히 공을 들여온 이재명 정부가 4일 사도광산 추도식 보이콧을 공식화한 것은 과거사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고 별도로 다루겠다는 방침의 재확인으로 풀이된다.
한일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임에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도광산 추도식이 한국이 불참한 가운데 '반쪽'으로 치러지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일본이 준비하는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한 결정을 알리며 그 이유로 추도사에 들어갈 강제성 관련 구체적인 표현에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실용외교를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 수교 후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취임 후 첫 양자 방문지로 일본을 택했다. 도쿄를 먼저 들른 뒤 워싱턴으로 향할 정도로 한일관계에 애정을 보인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반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언행을 선보였던 이 대통령이기에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이런 이 대통령의 전향적인 대일외교 노력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경직된 태도까지 바꾸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측이 준비한 추도사는 여전히 우리의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정부는 결국 행사를 9일 앞두고 불참을 통보했다.
일본이 조선인 아픈 역사가 서린 유산 등재 사실을 일방적으로 축하하고 강제노동 역사를 외면하는 자리에 한국 유가족을 '들러리' 세울 수 없다는 판단이 작년과 비슷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투표권을 쥔 한국이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노동자 추도식 등을 약속했지만, 그해 첫 추도식 때부터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였다.
당시 일측은 행사 명칭부터 명확한 추모 대상이 드러나지 않는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하고, 조선인 노역 강제성과 유감·사과 표현이 빠진 일본 추도사를 고집하면서 한국의 불참이라는 파행을 자초했다.
일측은 추도식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라며 일종의 기념행사 성격이라는 인식도 드러내기도 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측의 적극적 성의가 보이지 않고 바뀐 게 없기에 우리가 참석한다면 동조하는 꼴이 될 수 있고 국내 반발도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이 계속 약속을 어기는데 불참함으로써 항의 표현을 하고 한국 입장의 일관성을 지킨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퇴진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에 양보하기는 부담이 컸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 정국이 혼란스러운 점이 영향이 미쳤을 수 있다"며 "정치적 배려나 고려가 있었으면 이렇게 안 나왔을 텐데 그 정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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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 (사도[일본]=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24.11.25 sungjinpark@yna.co.kr
당장은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가 우호적인 한일관계 분위기에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한일관계에서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대응하되 미래지향적 협력은 분리해서 접근한다는 '투트랙 기조'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도광산 추도식이 의사에 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를 애도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치러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되, 전반적인 한일관계의 협력 분위기는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과거사는 국민감정과 결합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선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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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갱도 내부 둘러보는 추도식 참석자들 (사도[일본]=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 참석자들이 추도식 후 갱도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2024.11.25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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