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잉" 싱잉볼 파동에 명상 공간으로 변신한 도심 멀티플렉스
불교문화사업단 CGV동대문서 '특별한 템플스테이 고요극장'
소리 선명상·음식 선명상 호응…참가자 고민에 스님들이 답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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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에서 영화 대신 선명상 (서울=연합뉴스) 낙산사 템플스테이 연수원장 선일스님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CGV동대문의 한 상영관에서 소리 선명상을 지도하며 크리스털 싱잉볼을 연주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마음의 중심을 코끝에 두고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쉽니다. 한 번 더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면서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봅니다."
18일 낙산사 템플스테이 연수원장 선일스님이 설명을 마치자 크리스털 싱잉볼이 '디잉'하는 맑고 오묘한 음색으로 울려 퍼졌다.
이렇게 소리 선명상이 시작된 곳은 산속에 있는 절이 아니라 도심에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CGV동대문 내 상영관에서 '도심 속 극장에서 만나는 특별한 템플스테이 고요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찰음식과 차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 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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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에서 명상하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중구 CGV동대문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도심 속 극장에서 만나는 특별한 템플스테이 고요극장'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낙산사 템플스테이 연수원장 선일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소리 선명상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객석에 자리한 100여명은 싱잉볼의 파동을 몸으로 느끼며 차분하고 고요한 호흡을 반복했다. 10여분에 걸쳐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나자 스크린에는 최신 영화 대신 녹음이 짙어가는 산사 풍경이나 좌선하는 스님들의 모습 등을 배경으로 명상을 유도하는 5분 선명상 안내 동영상인 '행복으로 가는 선명상'이 상영됐다.
소리 선명상에 앞서 금귤정과, 호두정과, 올리브정과, 송화다식 및 뽕잎차를 먹고 마시며 진행한 음식 명상은 '먹는 것도 수행'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맛볼 기회를 제공했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진각스님은 "먹는다는 행위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겠지만 사찰 음식의 경우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면서 맛뿐만 아니라 촉감, 향, 색깔, 온도 등을 인식하며 천천히 음미하라고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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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아니라 멀티플렉스 (서울=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중구 CGV동대문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도심 속 극장에서 만나는 특별한 템플스테이 고요극장'에 온 참석자들이 철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하다가…자~ 차를 한잔할게요. 천천히 차를 드는 행위와 그것을 입에 대는 행동이나 살짝 목을 축이는 행동도 느껴보세요. 향을 맡아보고 맛을 느끼며 입 안쪽에 집중해 보세요."
진각스님은 이어 다식을 천천히 입에 넣은 후 처음에는 깨물지 말고 향을 맡고 입안에서 굴리며 촉감까지 느껴보라고 권했다. 이후에 서서히 씹으며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경험한 뒤 삼키라고 당부했다.
스님은 거의 액체가 된 입 속의 음식물을 자기 손에 내뱉은 모습을 상상해보라면서 그것을 다시 먹을 수 있겠느냐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무 더럽다' 혹은 '이상해요'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조금 전까지 내 입에서 잘 씹고 있는 것을 보기만 했는데 왜 이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날까요? 과연 이것은 더러운 것일까요?"
진각스님은 "입으로 음식을 먹고 있지만 어떤 때는 눈으로도 먹고 있다"며 "음식이라는 대상은 그대로인데 세상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뀔 때 나의 태도도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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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스님(가운데)과 선일스님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이어 "인식이 바뀌게 되면 느낌이 바뀌고, 느낌이 바뀌면서 감정이 바뀐다"며 "우리는 이러한 인식 과정을 중간중간 알아차리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스님은 관람석에 앉은 이들의 질문이나 고민에도 답했다.
남자친구 부모님이 결혼에 반대해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어떻게 해야 평온을 되찾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선일스님은 "인연은 억지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억지로 밀어내려고 해도 밀어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어차피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이었다는 것을 미리 신호한 것"이라며 "'결혼하고 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괴로운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좋은 기회를 주셨구나'라고 반대의 관점으로 보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독교 신자라고 밝힌 한 여성 참가자는 템플스테이를 하면 마음이 평안해져서 절에서 기도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방법을 질문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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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선명상 지도한 스님들과 참석자들 (서울=연합뉴스) 낙산사 템플스테이 연수원장 선일스님과 내소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진각스님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CGV동대문의 한 상영관에서 '도심 속 극장에서 만나는 특별한 템플스테이 고요극장' 행사를 마치며 참석자들과 기념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진각스님은 기도는 "생각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면서 "지긋하게 부처님을 바라볼 때 그곳에 또 다른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요령을 알려줬다. 또 경험이 쌓이면 경전도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날 객석에서 함께한 이들은 템플스테이에 여러 차례 참가한 이들이었는데 그 중 박종국 씨는 147회라고 이력을 공개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장소는 비록 절이 아니지만 템플스테이처럼 마음에 평온을 안겨주는 체험이었다고 반응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윤정 씨는 "오늘 오전부터 (마음이) 많이 좀 불안한 상태였다"면서 "이야기를 듣고 소리 명상을 하니 이제 안정감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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